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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7.29 대나무 천장 (2011. 07. 29) by Two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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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나무 천장'…나부터 부수자

SBS 정준형 기자

2011.07.29

'대나무 천장(bamboo ceiling)'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도 오늘 들어온 외신을 보면서 '대나무 천장'이란 말을 처음 접해봤습니다. 이른바 '유리 천장(glass ceiliong)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유리 천장'이란 기업에서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의미합니다만, '대나무 천장'은 미국 기업에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인식의 장벽을 말한다고 합니다. 대나무가 중국의 상징물 가운데 하나다보니, 아시아계를 상징하는 말로 쓰인 것 같습니다.

미국의 비영리 연구기관인 '워크-라이프 정책센터(The Center for Work-Life Policy)'라는 곳에서 경제 전문지인 포천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최고경영자 자리를 아시아계가 차지한 경우가 2% 이하, 정확히는 1.5%인 것으로 나타습니다.

이는 미국의 명문 아이비리그 대학생의 15-20%를 아시아계가 차지하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적은 수치라고 합니다. 인구 비율로 따져보더라도 아시아계가 미국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매우 적은 수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워크-라이프 정책센터'가 아시아계 미국인 3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아시아계 남성들이 향후 1년 안에 회사를 그만둘  가능성은 백인 남성에 비해 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아시아계 여성이 회사를 그만둘 가능성도 백인 여성들보다 40%나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합니다.

특히 응답자의 4분의 1 정도는 자신들이 회사에서 백인들과 비교해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와 함께 조사 대상 남성의 66%, 여성의 44% 정도가 자신의 직장 경력이 정체돼 있다고 응답하기도 했습니다.

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아시아계가 미국 기업에서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받고 있고, 이 때문에 이른바 '대나무 천장'을 뚫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요?

아시아계는 미국에서는 이른바 '모범적인 소수인종'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다른 인종에 비행 교육열도 높고, 일류 대학을 졸업한 뒤 잘 나가는 회사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아시아계가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는 이유는 뭘까요?
 

                    


조사 결과를 발표한 '워크-라이프 정책센터'는 아시아계에 대한 미국인들의 잘못된 고정관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미국 기업의 경영진들이 아시아계에 대해 "너무 조용하고, 묵묵히 순종하며, 강인한 리더쉽이 부족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시아에서는 장점으로 평가받는 요소들이 미국 사회에서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말로 해석됩니다.

'KAmerican Post'라는 미국내 한인 이민자들을 위해 활동하는 매체에 들어가서보니 보다 흥미있는 내용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위의 글머리에 있는 첫 사진은 'Breaking the Bamboo Ceiling(대나무 천장 부수기)’라는 책의 표지입니다. 이 책은 한인으로 코넬대를 졸업하고 JP 모건 등에서 인력채용 업무를 해온 '제인 현'이라는 여성이 쓴 책입니다만, 이 책에 소개된 아시아계 미국인들에 대한 주류 미국인들의 고정관념은 이렇다고 합니다.

'조용하다, 의견을 개진하지 않는다, 복종적이다, 수학과 과학을 잘한다, 열심히 일한다, 똑똑하다, 교육을 많이 받았다, 질문을 많이 하지 않는다, 아시안들끼리 뭉친다, 영어에 능숙하지 못하고 외국인으로 보인다...'

이렇듯 미국인들이 아시아계에 대해 잘못된 고정 관념을 갖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모습 때문이라고 합니다.

'회의에서 말을 하지 않고 의견을 개진할 때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정책이나 일하는 것에 대해 거의 불평하지 않는다, 아시안끼리 모인다, 조용히 말하고 말할 때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자기 소개와 자랑을 못한다, 위험을 기피한다, 일하느라 항상 바빠서 근무가 끝나고 다른 사람들을 사귈 시간이 없다...'

보시니까 어떤가요, 위에 언급된 내용들 가운데 상당 부분은 우리나라 직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닌가요? 미국내 아시아계의 이런 모습들은 미국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은 아시아계 2세들에게도 나타나는데, 이는 이민 1세 부모들의 영향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른바 '겸손과 과묵, 상사에 대한 순종, 자신의 의견을 잘 피력하지 않는 문화' 등 아시아적 가치가 주류 미국인들에게는 '소극적이고 자신감이 없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 기업에서 아시아계가 대나무 천장을 부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대나무 천장 부수기' 저자 제인 현>

'대나무 천장 부수기'라는 책을 쓴 제인 현은  "한인 부모들은 공부만 강조한다. 하지만 이는 자녀가 참된 리더로 발전하는데 충분하지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한인 부모들은 한국식으로 자녀가 명문대학만 입학하면 된다는 인식이 크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시아계가 대나무 천장을 부수기 위해서는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간격을 좁혀야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학생 때부터 공부만하는 '공부벌레'로 키울 게 아니라, 명문대학 입학 이후 더 먼 장래를 생각하며 다양한 인종의 청소년들과 어울리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 줘야한다는 것입니다.

아시아계가 미국 기업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고, 이른바 대나무 천장을 깨부수기 위해서는 아시아계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미국 기업 경영진들의 편견도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우수한 아시아계 인재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은 기업의 손실이자 미국의 손실로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여전히 대다수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있어  '공부' 만을 최우선으로 강조하며, 자녀들이 일류대학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다양한 개성과 창의성은 무시되고, 모든 게 '공부'로 귀결되고, 모든 게 '어떤 대학'에 들어가느냐로 모아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도전적이고 창의적 인재, 주류 미국인들과 국제적으로 경쟁할만한 인재가 나오길 기대할 수가 있을까요?

한국의 사회문화, 기업문화는 또 어떻습니까? 위에서 언급한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들-겸양과 과묵, 순종 등이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어른들 앞에서 함부로 말하다간 대번에 '버릇 없는' 아이로 찍히고, 회사 상사 앞에서 자기 주장을 확실히 했다가는 '싸가지 없는' 직원으로 찍히기 십상입니다. 물론, 미국의 서구적 가치와 아시아적 가치를 나란히 비교하기는 힘들겠습니다만, 말로만 '글로벌 경쟁'을 외치면서 막상 문화적으로는 옛날식만 고집하고 있는 한국의 사회.기업문화 역시 바뀔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문제는 쉽게 바꾸기가 힘들다는 점일 것입니다. 당장 저부터 그렇습니다.  초등학생인 제 딸아이에겐 벌써부터 공부 잘해야 한다는 잔소리를 하고 있고, 언제부터인가 똑부러진 후배들 보다는 순종하는 후배들을 은근히 편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부터 반성하고 돌아봐야 겠습니다.


Posted by Two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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