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1.05 걸어서 지구 세바퀴반 2 (2012. 1. 2) by TwoTen
  2. 2012.01.05 걸어서 지구 세바퀴반 3 (2012. 1 4) by TwoTen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2

우리나 이들이나 과거에 강대국에게 약탈당한 적이 있다는 역사적인 연대감도 있었을 것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이들의 입장에서 보니 서양의 눈으로만 본 우리의 세계사 교육이 얼마나 사실과 다른 엉터리역는가도 뼈저리게 즈낄 수 있었다. 16쪽

남미에 있는 아르헨티나가 백인의 나라가 된 것은 순전히 은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라는 말이 바로 라팅어로 은이라는 뜻이다. 18쪽

사람은 태어나면서 죽는다. 열심히 살든 대충대충 살든 사람은 누구나 죽는 것이다.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는 옛말처럼 방정맞은 소리지만 가능성으로만 따져보면 바로 내일 죽을 수도 있다. 48쪽

사람이 죽으면 얼마나 미인이었는지, 얼마나 몸매가 좋은지, 피부색이 무엇이었는지에 상관없이 저렇게 뼈와 가죽만 남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두께 3cm도 안되는 겉껍질을 가지고 이렇게 생겨서 좋으니,
저렇게 생겨서 마음에 안드니 한다. 많은 경우에 외모가 사람을 판단하는 거의 유일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76쪽

페루 산타 카탈리나 수녀원....옛날에는 딸 중 하나가 이 수도원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집안의 명예가 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수녀들이 자기의 뜻과는 상관없이 이 수녀원에 갇혀 장탄식과 한숨으로 그 꽃다운 나이를 보냈을까.
부잣집 딸들이야 그래도 가문을 영광스럽게 한다는 명분이나 있지 그저 딸려 들어온 몸종의 인생은 무엇인가 말이다.
주인님의 화려하고 푹신한 침대에 비해 벽을 하나 사이에 두고 있는 하녀들의 돌침대는 다리도 제대로 뻗지 못할 만큼 좁고 옹색하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산다는 수녀원에서조차 돈과 신분에 따른 대접의 차이가 이렇게 선명한 것에 마음이 착잡해진다. 91쪽

어쩐지 페루사람들은 칠레나 아르헨티나 사람들보다 마음속 깊이 정이 간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나라 사람들일수록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쩐 일일까?
인간적인 걱과 물질은 대척점에 있기 때문일까? 무엇보다 가난하지만 '인간의 냄새'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태어나서 한번, 결혼 전날 한 번, 죽을 때 한번 이외에는 평생 목욕 안하는 것을 신앙처럼 여기고 있다는 인디오들.
때가 덕지덕지 붙어 있지만 인디오 아이들을 보면 그냥 덮석 안아주고 싶을 만큼 정이 솟는다.
이런 이디오들에게 신기한 동물 보듯 무례하게 아무데서나 카메라를 들이대는 구미 관광객들이 밉다.
같은 인간으로서의 존경심은 커녕 고맙거나 미안한 마음조차 손톱만큼도 없는 상스러운 사람들.
그런 무뢰한들에게 무시당하는 인디오들이 마치 내 동족인 것처럼 마음 아프다. 93쪽

이 크고 화려한 교회를 짓기 위해 동네 사람들은 얼마나 닦달당했을 것이며, 얼마나 큰 짐을 져야 했을까?
교회가 종교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이들의 밥상에서 밥을 빼앗아 저 멋진 건물을 지은 것은 아니었을까? 94쪽

"우리는 우리를 도와준 사람들에게 받은 만큼 갚을 기회가 거의 없어요.
그건 그 사람들이 이미 우리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단계를 지났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은혜를 입은 만큼, 아니 거기에 이자를 붙여 다른 사람들을 정성껏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나를 도와준 사람에게 보답하는 길일 뿐 아니라 인생을 바로 사는 길이겠지요" .
그리고 또 하나. 인생은 약간 손해보는 듯 사는 게 마음 편안하게 사는 비결이라고 하셨다. 95쪽

정글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문명인들의 허약함의 표정은 아닐까.
이를테면 정복하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 말이다.
우리가 미개한 사람들이라고 여기는 밀림의 주민들은 정글의 법칙을 충실히 지킴으로써 정글의 일부가 되고,
정글로부터 필요한 것을 부족하지 않게 얻고 있었다. 아주 현명하게. 174쪽

사람은 사는 곳에 따라 달라지는 모양이다. 도시에서 아옹다웅 경쟁하고 그러는 가운데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사느니
이렇게 자연과 더블어 편안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한 일생을 잘 사는 것이냐? 비록 삶의 풍운에 따라 고국을 떠나왔지만
시골 고향 사람들처럼 순박한 사람들과 함께 구순하게 살 수 있다는 것도 또 다른 행복이 아닐까? 176쪽

지난 날의 고용주는 무력으로 이 땅을 점령한 스페인 정복자들이었는데 지금은 돈으로 이 땅을 좌지우지하는 강대국의 자본가들이라는
것뿐이다. 이러고도 외국 자본가들은 자신들 덕분에 볼리비아가 산업을 일으키고 고용을 증대했다고 말할 것이다.
이 막장 광부들 입안에서 음식을 빼앗고 마지막 피까지 짜가고 있다는 사실은 애써 모른체하면서 말이다. 188쪽

인간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생각해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 정상에 올라가거나
또는 자연의 작은 법칙을 발견해내고 '자연을 정복했다'고 말한다. 마치 거대한 호수에서 한 컵의 물을 뜨고는
그 조그만 컵에 호수를 다 담은 듯 호들갑을 떠는 것과 같다. 아무리 많은 컵에 물을 떠 간대도 호수는 호수로 남아 있는 데.
인간은 자연을 정복할 수 없다. 자연을 정복해서도 안된다. 자연과 융화를 이뤄 자연스럽게 살아야 한다. 이게 바로 동양의 정신이다.
최근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진 것 같다.
근대문명 이전에 사람들이 가졌던 자연에 대한 순응과 경외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아주 반가운 일이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 213쪽

여기서 세계사를 돌이켜보면 서글픈 생각이 든다.
세계 전역의 거의 모든 원주민들이 얼굴 하얀 서양사람들에게 '발견'되었다고 하지만 이건 정말 웃기는 이야기다.
누가 누구를 발견했단 말인가? 서양 사람들 눈으로 보면 발견된 것일지 모르지만 원주민들은 몇 천 년 전부터 거기 그대로 살고 있었던 게 아니가?
원래 주민들이 자기의 문화를 가지고 고유의 방식대로 잘 살고 있느 땅에 가서 새로운 땅을 발견했다고 떠들어댄 것은 정말 가당치도 않다. 217쪽

원주민을 싹 쓸어니고 그들의 문명을 초토화하고 원주민들의 생활터전인 자연을 마구훼손하는 것이 개척인가?
어쩌면 아메리칸 인디언 고유의 방식대로 사는 것이 더 고귀한 삶인지도 모른다.
자연을 경회하고 존중하면서 자연에 순응해 사는 석이 자연을 정복하고 파괴하는 것보다 훨씬 인간다운 삶이 아닌가?
무기를 든 소수의 침입자들에 의해 얼마나 많은 원주민들이 피를 흘리고 얼마나 많은 문화유산, 자연이 황폐해지고 말았는가?
인디언의 눈으로 보면 서구인들이 찬양해마지않은 '신대륙 발견자'들과 '개척자'들은 만행을 일삼은 침략자, 약탈자에 지나지 않는다.
아메리카 인디언 중의 누가 콜럼버스를 인류의 영웅으로 추앙할 것인가?
수천 년 평화롭게 살아온 영토와 종족을 파괴하는 단초를 제공한 그를, 여기에서 나는 내가 배워온 서구적 세계사를 개탄하는 것이다. 217쪽

태양의 신 토나티우, 그를 둘러싼 4개의 얼굴이 재규어, 바람, 물, 불이다. 이건 동양의 5행 즉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와 비슷하다. 220쪽

아즈테카 족은 1324년, 지금의 멕시코 시티에서 예언의 장소를 발견하고 도읍으로 정했다.
독수리가 뱀을 잡아먹고 있는 문양은 멕시코 국기가 되었고 멕시코 올림픽의 엠블럼으로 쓰이기도 했다. 227쪽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229쪽

스페인 정복 전에 아케리카 대륙에서 부침했던 많은 문명 중 가장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 마야문명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들은 조직적인 경제며 천문학, 수학, 건축술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조각이나 문학, 춤, 그림 등 예술분야에도 뛰어났다고 한다.
이는 마야인들이 옥수수를 넉넉히 확보하면서부터 많은 시간을 '문화발전'에 투자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잉카문명과는 달리 문자가 있었던 마야문명이 이렇게 수수께끼로 남은 것은 순전히 스페인 정복자들 탓이다.
그들이 신전이나 비문에 새겨진 그림문자들을 사교(邪敎)를 전한다 하여 거의 전부 뭉개벼렸고
마야역사의 문화발전과 흥망성쇠를 알 수 있는 옛 문서들도 '악마의 책'이라 하여 도서관째 소각했기 때문이다.
남미판 분서갱유(焚書坑儒)라고나 할까. 234쪽

차크모르 상은 전사의 신전입구에 비스듬히 손을 괴고 누워있다.
동그란 눈에 무표정하고 약간은 얼이 빠진 듯 멍청해 보이는 이 석상이 살아 움직이는 사람 심장을 제물로 받았다는 비의 신이다. 235쪽

마야인들은 기원전 10세기, 한창 중흥을 이루던 서기 1000년경 50개의 도시를 버리고 별안간 대이동을 시작, 영영 역사 속으로 사리지고 말았다. 235쪽

사람은 자기가 받은 교육과 자란 환경에 얼마나 크게 영향을 받는 걸까. 249쪽

언제나 목교가 확실한 도전이란 이렇게 흥분과 힘을 주는 것일까. 258쪽

48억년이라는 지구의 역사를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시간 단위인 1년과 대비 해 놓았다.
계산에 따르면 한 달이 4 억년이고, 하루가 1 천3 백만년, 한 시간이 55만년이였다.
그렇게 따져보니 공룡이 지구상에 나타난 것이 12월 11일 부터 16일까지이고 인류의 출현은 놀랍게도 12월 31일 저녁 8시의 일이라고 한다.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밤 11시30분, 현대과학이라는 것을 알고 누린 것은 12월 31일 자정 직전의 2초간이다.
이렇게 보면 마야문명과 현대과학은 불과 10초의 차이가 날 뿐이다. 270쪽

강한 것만이 살아남는다는 다윈의 진화론은 틀린 말이 아니다. 276쪽

사람들은 경험과 교육으로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갖게 되고 그 테두리 안에서 가치관과 인생관을 만들어간다.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가치관은 절대로 바뀔 수 없는 것으로고착되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나 사회와 문화를 받아들이려하지 않는 것이다. 277쪽

사람은 자신이 아는 대로 보인다.
자기 나라의 사회나 문화의 창을 통해서만 바라보는 것이다. 282쪽

단지 이성애자가 수적으로 많아서 교육과 법적 사회적 제도가
이성애자를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을 뿐이다. 284쪽

자연스럽고 부드럽고 순수하게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미소,
언제나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살마만이 지을 수 있는 넉넉한 미소,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따뜻난 미소,
이모든 것이 절묘하게 조화된 성자 같은 미소다. 296쪽

행복은 순전히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다. 296쪽

똑같은 상황과 조건에서도 행복할 수 있고, 불행할 수 있다는 평범하면서도 잊기 쉬운 진리...297쪽

무엇인가 진심을 다해 기도하는 모습자체가 신앙일 테니까 305쪽

교회 건물이나 예배 형식은 카톨릭과 비슷하지만 이곳 인디오들이 기도하는 대상은
이 교회 지하에 묻혀 있는 선조들이거나 토속신이라는 말을 듣고 마야 신앙과 카톨릭 신앙이 공존하는 현장을 보는 것 같았다. 306쪽

스페인 정복자들이 수백 년 식민통치를 통해 원주민들로 하여금 그들을 따르게 할 수 있었던 건
성당을 짓고 가슴에 성호를 긋게 하는 겉껍질에 불과한 형식뿐이었다.
마야인들이 강요에 못이겨 성당에와서 이국의 신에게 머리를 조아릴 때도 그들의 영혼은 오랜 세월 믿어왔던 신에게
조상들이 해온 대로 기도했던 것이다. 순수한 마야의 정신은 이렇게 이어져 온 것이다.
마야인들의 자부심과 인내에 머리가 숙여진다. 그리고 그들이 아주 아주 크게 느껴진다. 309쪽

나이 마흔 살이 되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5개국어를 마스터하는 거다.
현재로는 국어 영어 일어에, 좀 부족하지만 스페인어를 그런 대로 할 수 있다.
중남미를 여행하면서 더 열심히 동부하고 연습한다면 곧 스페인어도 어느 정도 될 테니 한 가지가 남았다.
그건 중국어다. 내 세계여행 계획의 맨 마지작이 중국 변경지방이니
그 1년 동안 열심히 하면 마흔 살까지 5개국어 마스터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
사실 언어처럼 실용적인 것은 없다.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니 잃어버릴 염려도 없고 항상 가지고 다니며 언제라도 입만 열면 쓸 수 있는 것이니까.
게다가 언어는 그 언어를 쓰는 나라를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하고 금상첨화로 배우는 재미까지 있다.
꼭 잘해야 한다는 무리한 스트레스를 받지만 않으면 말이다. 313쪽

한 문화를 지탱하는 것은 언어와 음식이 아닐까...334쪽

여행을 통해 우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판단기준이 절대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전혀 다른 사회와 문화를 보는 눈이 유연해졌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충돌의 체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는 것,
그것이 여행의 가장 큰 소득이다. 349쪽

어떤 삶이 멋진 삶인가.
첫째,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자.
둘째, 심플하게 살자.
셋째,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살자. 3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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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3

여행의 1 년은 일상의 10년과 맞먹는다던가 9쪽

강대국의 수탈에 힘겹게 살아남은 고난의 역사는 과거에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가슴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13쪽

여행은 '떠나는 것' 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여행은 '만나는 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 풍속, 생김새와 생각들과의 만남이다. 그리고 사람들, 여행이 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은 바로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14쪽

국제기구의 요구는 결국 서구적인 우월의식의 표출, 그 이상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23쪽

이념이 무엇이길래, 같은 인간끼리, 그것도 같은 나라 사람끼리 이렇게까지 해야 했는가. 그게 도대체 무엇이길래. 29쪽

나그네는 길에서 짐을 만들지 않는다! 사줘도 못 가지고 다녀요. 34쪽

이것이 방랑자의 사랑, 유목민의 사랑의 한계이자 비극이다. 만날 때부터 언젠가는 헤어져아 하는 상황을 생각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유목민의 살앙은 더 안타깝고 애틋하고 깊은 것인지도 모른다. 38쪽

이들끼리 서로를 알아 볼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신체적 특징은 민족의 대명사, '배낭'이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담겨 있는 한 덩어리 배낭은 사람들이 불필요한 것을 얼마나 욕심내며 살고 있는지 명백히 보여주는 인생의 교훈이다.
배낭 하나를 채울 정도의 물건이면 한 사람이 살기에 충분하다는 지혜를 배낭족들은 잘 알고 있다. 40쪽

이들의 외적인 특징이 배낭과 전대라면 내적인 특징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생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배낭을 메고 나서는 동안만큼은 그렇다. 간혹 쉬어가기는 해도 멈추지는 않는다.
이들은 머무는 곳에서 최대한의 것을 얻어 누리지만,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발길을 옮기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
옮긴 곳이 별로 좋지 않은 환경이라도 잘 참아낸다. 오히려 힘든 일과 어려운 상황을 피해 가지 않고 정면돌바하면서 힘을 얻는다.
상황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들은 20세기 후반에 생겨나 21세기에 맹위를 떨칠 새로운 시대의 유목민이다. 42쪽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다른 형태의 인생을 살다가 만난 네 사람이 여러각도의 생각과 의견을 충돌없이 주고받는 것 자체가 참으로 멋진 일이다. 49쪽

다양한 국적과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길을 가다가 우연한 교차점에서 만나 인연만큼 함께 어울리다 인연이 다하면 헤어진다.
이별은 그렇게 아쉬워하지 않아도 좋다. 그들은 인연이 닿으면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고, 인연이 없으면 영원히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50쪽

중국여행을 길게 하려 했던 또다른 이유는 좀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를 더 잘 보기 위해서' 이다.
마음 밑바닥에 웅쿠리고 있는 중국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의 정체를 밝혀내고, 우리의 자리를 제대로 찾아보고 싶었다.
예를 들어 과거 우리 문화와 역사는 중국의 변방문화권으로서 정신적. 문화적 식민지와 다를 바 없덨다는 통념도 그렇지만
중국을 직접 다녀온 사람들의 한 마디가 나의 마음을 더 자극했다. "경복궁은 자금성 화장실만도 못하다." 54쪽

나를 제대로 알고 사랑해야만 비로소 다른 이를 이해하고 사랑항 수 있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세계가 좁아질수록 자신의 뿌리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54쪽

바로 그 유명한 흑치(黑齒)다. 1945년 혁명전 대부분의 북부 여자들은 이를 까맣게 물들이고 다녔다는데 지금은 40대 이상 아줌마들에게서만 볼 수 있다.
매일같이 자기 전에 이빨에 어떤 나뭇잎을 붙이고 자면 한달 만에 영구흑치가 된다고 한다.
북부 여인들은 흑치가 아름답고, 이가 튼튼해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외국인들에게 강간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정 떨어지는' 흑치로 만들었다는데 내가 보기에는 후자가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72쪽

이런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건 삶과 내일에 대한 기대와 믿음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닐까.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을 거라는 기대. 땀흘려 일하고 마음을 다해 노력하는데 내일이 밝지 않을수 없으리라는 믿음 말이다. 멋있는 사람이다. 110쪽

여기 미얀마의 소승불교에서는 이승에서 공덕을 쌓는 것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이 탑이나 사원을 짓는 것,
그리고 아침바다 공야하는 것이라고 여긴단다. 180쪽

어린애 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는 굿판에서, 기도하는 사람이나 굿을 벌이는 사람이나 모두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다.
20세기 말을 사는 현대인들이 저렇게 자연이나 역사적인 인물들이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으며 정성스레 비는 모습이 어쩌면 유치한 미신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이 눈물나게 아름답게 느껴진다.
미신이란 무엇인가. 비과학적이라는 뜻인가. 그렇다면 지구상의 어떤 종교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종교란 다름아닌 믿음이 아니던가. 그리고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무언가를 위해 순수하게 염원하는 마음. 184쪽

왜 이렇게 많은 불탑이 생겼을까 하는 의문은 미얀마의 소승불교를 조금만 알면 쉽게 이해랗 수 있다.
900년전에 스리랑카에서 온 소승불교의 교리에 따른면 현세란 내세를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며
현세에 공덕을 쌓아야 내세에 복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데, 복을 쌓는 것 중에서 제일 최고로 치는 것이 바로 탑을 건립하는 것이다. 186쪽

최근 유엔자료에 따르면 한 시간에 28명의 어린이가 죽어가고, 극빈과 아사 속에서도 매일 3000명의 신생아가 태어난다고 한다. 215쪽

군데군데 작은 연못에서는 사람들잉 목욕을 하거나 빨래를 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연못마다 꽃분홍색 연꽃이 만발해 있다. 모슬렘교가 국교인 이 나라의 국화가 불교의 상징인 연꽃인 이유를 알 것 같다.
한국에서는 근래에 경회루 연꽃이 불교의 상징이라고 해서 다 뽑혔다는 소식을 듣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새롭다. 238쪽

마당 끝이 부엌인데 한켠에는 쇠똥 말린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 곳에서 쇠똥은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연료다.
그 화력이 장작보다 훨씬 좋아 취사용으로 아주 훌륭하다고 한다.
만일 인도나 방글라데시에서 쇠똥을 쓰지 안호 나무로 밥을 지었다면 그 어마어마한 인구가 쓰는 나무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이것만 보아도 쇠똥은 아주 쓸모있는 재활용품이다.
이곳 여자들은 축사와 집 근처의 쇠똥을 손으로 말끔히 긁어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그것을 집 앞에 파놓은 웅덩이에 모았다가 마른 짚을 넣고 이겨 말린다.
그래서 이 동네는 집 벽마다 손으로 찍어바른 쇠똥이 마르고 있는데, 그게 온지 이틀이 지나니까 하나도 더럽게 느껴지지 않는 거다.
쇠똥 긁던 손을 잘 씻지도 않은 여자들이 밀가루 반죽을 해서 중국 호떡같이 넓적한 짜파티라는 빵을 만든다.
분명히 쇠똥 들어간 빵인 줄 알면서도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걸 보면 내 비위도 어지간한 셈이다. 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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