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이야기/시'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4.03.07 방문객 / 정현종 by TwoTen
  2. 2014.02.23 뼈아픈 후회 - 황지우 by TwoTen
  3. 2014.02.18 나무. / 김혜정 by TwoTen
  4. 2013.12.10 즐거운 편지 / 황동규 (2013. 12. 10) by TwoTen
  5. 2012.04.06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2012. 4. 6 by TwoTen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정현종 시집, 광휘의 속삭임, 문학과지성사, 2008.

'여러이야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뼈아픈 후회 - 황지우  (0) 2014.02.23
나무. / 김혜정  (0) 2014.02.18
즐거운 편지 / 황동규 (2013. 12. 10)  (0) 2013.12.10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2012. 4. 6  (0) 2012.04.06
Posted by TwoTen
l
뼈아픈 후회 -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 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어느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1998, 문학과지성사.

'여러이야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문객 / 정현종  (0) 2014.03.07
나무. / 김혜정  (0) 2014.02.18
즐거운 편지 / 황동규 (2013. 12. 10)  (0) 2013.12.10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2012. 4. 6  (0) 2012.04.06
Posted by TwoTen
l
나무 --김혜정--

스무살 시절...

나는 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나무가 질투가 나도록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난 오늘 문득 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무성한 잎사귀로 지친이들에게 그늘을 내려주고 쉬게해주는 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부러웠던건

땅에 깊이 뿌리내린 그 견고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나무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이상을 향해나갈줄 아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오늘 난...

왜 나무가 되고 싶어했는지 알았습니다.

25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왜 나무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하늘을 향해 뻗어가지 못하고
휴식의 그늘도 드리지 못하고...

여전히..

땅에 뿌리를 내리고 싶어했던 그 열망도 이루지 못하고...

여전히...

물위를 떠다니는...

그래서 늘... 배멀리를 하듯 울렁거리는 현기증에 시달려야하는...

나는....

수초와 같은 존재여서

그렇게 나무가 부러웠던 것이었다는걸...

나는 물에 뿌려진 씨앗이라서...

옥토에 뿌려져

뿌리를 내리고...

무성한 잎사귀를 자랑하며...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을 향해 두팔버리고 뻗어가는 나무가
그토록 부러웠던 것이었다는걸...

난...

이제야 알았습니다.

25년도 더 넘도록..

조금도 변합없이..

여전히 붕떠서 흔들리고 있어야 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이제야 알았습니다.

내가

달라질 수 없었던 이유를...

난...

이런 울렁거리는 고통을

더 많은 시간 겪어야 함을....


'여러이야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문객 / 정현종  (0) 2014.03.07
뼈아픈 후회 - 황지우  (0) 2014.02.23
즐거운 편지 / 황동규 (2013. 12. 10)  (0) 2013.12.10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2012. 4. 6  (0) 2012.04.06
Posted by TwoTen
l
즐거운 편지
황동규

1.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여러이야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문객 / 정현종  (0) 2014.03.07
뼈아픈 후회 - 황지우  (0) 2014.02.23
나무. / 김혜정  (0) 2014.02.18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2012. 4. 6  (0) 2012.04.06
Posted by TwoTen
l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여러이야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문객 / 정현종  (0) 2014.03.07
뼈아픈 후회 - 황지우  (0) 2014.02.23
나무. / 김혜정  (0) 2014.02.18
즐거운 편지 / 황동규 (2013. 12. 10)  (0) 2013.12.10
Posted by TwoTen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