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황동규-

여러이야기 2012. 8. 29. 21:10

                      기도                               

                                                         황동규

1
내 잠시 생각하는 동안에 눈이 내려

눈이 내려 생각이 끝났을 땐 눈보라 무겁게 치는 밤이었다

인적이 드문, 모든 것이 서로 소리 치는 거리를 지나며

나는 단념한 여인처럼 눈보라처럼 웃고 있었다

내 당신은 미워한다 하여도 그것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바람부는 강변을 보여주며는

나는 거기에서 얼마든지 쓰러지는

갈대의 자세를 보여주겠습니다
2
내 꿈결처럼 사랑하던 꽃나무들이

얼어 쓰러졌을 때 나에게 왔던

그 막막함 그 해방감을 나의 것으로 받으소서

나에게는 지금 엎어진 컵

빈 물주전가 이런 것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는 닫혀진 창

며칠내 끊임없이 흐린 날씨

이런 것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곤 세명의 친구가 있어

하나는 엎어진 컵을 들고

하나는 빈 주전자를 들고

또 하나는 흐린 창밖에 서 있습니다

이들을 만나소서

이들에게서 자간 잠간의 내 이야기를 들으소서

이들에게서 막막함이 무엇인가는 물지 마소서

그것은 언제나 나에게 맡기소서

3
한 기억 안의 방황

그 사방이 막힌 죽음

눈에 남은 소금기

어젯밤에는 꿈많은 잠이 왔었다

내 결코 숨기지 않으리라

좀 더 울울히 못산 죄 있음을

깃대에 달린 깃발의 소멸을

그 우울한 바라봄, 한 짧고 어두운 청춘을

언제나 거두소서

당신의 울울한 적막 속에

Posted by Two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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