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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콘의 폭주, 美 국민은 막을 수 없다"
[주간 프레시안 뷰] 미국 경제 실체 드러나면 네오콘도 몰락

"미국은 어떻게 세계를 착취했나"
[주간 프레시안 뷰] 中 군사전략가의 美 금융제국 비판 <上>



달러 패권의 몰락, 인류 공존은 가능한가?
[주간 프레시안 뷰] 中 군사전략가의 美 금융제국 비판 <下>







중국군 핵심부가 분석한 '달러의 위안화 공격'
중국 차오량(喬良) 장군 … 달러 ‘10년 약세-6년 강세’ 순환 주기 밝혀

월가와 중국의 전쟁이 한창이다. 조지 소로스 등 헤지펀드 연합군이 중국의 관문 홍콩을 집중 공격하고 있다. 이번 전쟁 결과는 달러 패권주의의 향방을 가른다는 점에서 전세계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 사태를 중국은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하고 있는지도 관심사이다. 이와 관련 중국 국립 국방대학의 교육주임인 차오량(喬良) 장군의 분석과 전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차오량 장군은 미국이 1971년 이후 ‘10년의 달러 약세, 6년의 달러 강세’라는 달러 가치의 순환을 통해 세계의 부를 빨아들이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금융제국이 됐다고 분석했다. 1980년대 중남미의 외채위기,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바로 이러한 미국의 달러 조작에 의한 것이었으며 2012년에는 댜오위다오(센가쿠) 등 중국 주변에서의 지역적 위기를 통해 중국에 몰려든 막대한 국제 자본을 미국으로 끌어들이려다 실패했다는 주장이다. 미국은 지금도 중국 주변의 지역 위기 조장을 통한 중국 내 국제자본의 미국 환류를 노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대령 시절인 1999년 왕시앙수이 대령과 공저로 펴낸 ‘무제한 전쟁(Unrestricted War)’이라는 저서에서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값비싼 첨단무기의 확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적의 전략을 혼란시키며, 예측 불가능한 방법으로 의외의 장소에서 적을 타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한 강연에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위협은 군사적이거나 지정학적인 것이 아니라 금융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달러 패권으로부터 중국의 안정적 경제성장을 지속하는 것이 중국 군의 사활적 과제라는 것이다. 중국 주변에서의 위기 발생이 대규모 군사 갈등으로 번져 국제 자본이 중국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아야 하고, 중국 주변의 정세 안정이 가장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중국 국립 국방대학의 교육주임인 차오량(喬良) 장군의 강연 전문이다.

 

1. 중국의 주변 환경과 미국의 달러 패권

 

1) 역사상 최초의 금융제국 탄생

이 문제에 대해서는 금융전문가 등 경제 문제에 정통한 분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를 전략적 관점에서 말하고자 한다. 1971년 8월 15일 미국은 달러와 금의 연동(peg) 관계를 끊어버렸다.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44년 7월,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세계 패권과 기축통화의 지위를 물려받기 위해 3개의 국제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정치시스템으로는 유엔, 무역시스템으로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나중에 WTO가 됨), 그리고 금융 및 재정 시스템으로 브레튼우즈 체제가 그것이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국제통화체계에서 달러의 지배력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1944년으로부터 27년이 지나는 동안, 즉 1971년에 이르러 미국의 통화 지배력은 금과의 연동 때문에 그 힘을 상실했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시작될 당시, 미국은 달러의 지배력을 보증하기 위해 세계와 약속을 했다. 다른 나라의 통화들을 달러에 연동시킨다면 미국은 달러를 금에 연동시켜 그 화폐 가치를 안정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연동시킨다는 말인가? 금 1온스 당 35달러로 달러 가치를 고정시키며, (각국의 중앙은행에 대해) 35달러를 금 1온스와 교환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세계와의 약속 때문에 미국으로서도 달러를 마음대로 운용할 수 없었다. 간단히 말해, 미국은 제멋대로 달러를 찍어낼 수 없게 된 것이다. 미국은 '35달러와 금 1온스의 교환' 약속을 지켜야 했고, 달러를 많이 찍어내 금 가격이 35달러를 넘어가면 그만큼 더 많은 금을 비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세계에 대해 그런 약속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브레튼우즈 체제 출범 당시) 세계 금 비축량의 80%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상황은 미국의 소망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어리석게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개입해 엄청난 재원을 낭비한 것이다. 미국이 베트남전쟁에만 투입한 전쟁 비용이 자그마치 8000억 달러에 이른다. 전쟁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미국은 달러-금 태환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미국의 약속대로라면 35달러로 금 1온스를 살 수 있어야 했으나 달러의 남발로 달러 가치가 크게 떨어졌기(금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1971년 8월 미국의 금 보유량은 8800톤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심각한 재정 및 금융위기에 빠졌고,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곤경을 더욱 악화시켰다. 일례로 (1960년대)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자국이 보유한 달러(22억~23억 달러) 모두를 금으로 바꿔줄 것을 미국에 요구하도록 중앙은행에 명령했다. 드골은 미국은 '달러 가치 안정' 약속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프랑스가 금 태환을 요구하자 다른 나라들도 그 뒤를 따랐다. '우리는 달러를 원치 않소, 금으로 바꿔주시오'라고 미국에 요구한 것이다. 미국은 궁지에 몰렸다.

 

결국 1971년 8월 15일 닉슨 대통령은 달러-금 태환 약속을 파기했다. 달러와 금의 연동이 끊어진 것이다. 이로써 브레튼우즈 체제의 파탄이 시작됐다. 그러나 당시에는 앞으로의 국제금융 체제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달러를 신뢰했다. 달러는 지난 30년 가까이 국제 결제 및 기축통화로서 이용돼 왔기 때문이었다. 달러의 가치가 (미국 정부의) 보유 금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달러는 한낱 푸른 종이쪽지에 지나지 않는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렇다면 (금으로 가치가 보장되지 않는) 달러를 계속 사용해야 한단 말인가? 물론 달러를 국제통화로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경우에 문제가 발생한다. 달러 대신 국가 간에 교역되는 재화의 가치 결정과 결제 역할을 할 마땅한 다른 국제통화가 없다는 문제다. 화폐란 가치 측정의 수단인데, 만일 달러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다른 나라의 통화를 신뢰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중국과 러시아가 무역을 할 때 양국이 상대방의 통화인 루블, 또는 위안화를 결제수단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두 나라는 달러를 결제수단으로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달러는 30년 가까이 이어져온 국제 관행에 따라 국제통화로 쓰이게 됐다. 나아가 1973년 10월 (1차 석유파동을 계기로) 미국은 석유 수출 국가(OPEC)들에 대해 향후 모든 원유 거래는 오직 달러로만 한다는 조건을 받아들이도록 했다. 이전까지 국제 석유 거래에는 여러 통화가 사용되었지만 1973년 10월 이후에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OPEC은 국제 석유 거래의 결제에는 오직 달러만을 사용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말하자면 미국은 달러와 금의 연동을 폐기한 후에 달러를 가장 핵심적 자원인 석유에 연동시킨 것이다. 왜 그랬을까? 달러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석유라는 에너지는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한 자원이라는 점을 미국은 꿰뚫어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국가든 에너지가 필요하고, 모든 국가가 석유를 필요로 한다. 즉 (달러와 석유가 연동됨으로써) 누구나 석유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모두가 달러를 필요로 한다는 것과 같다는 말이 된 것이다. 달러를 석유 거래 결제에 연동시킨 것은 미국의 매우 영리한 책략이었다. 1971년 달러와 금의 연동이 폐기되고 1973년 달러가 석유 거래에 연동됨으로써 미국은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20세기 최대의 사건은 1971년 달러-금의 연동 폐기

 

많은 경제학자, 금융전문가들은 1차 대전이나 2차 대전, 또는 소련의 붕괴가 20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20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1971년 8월 15일 달러와 금의 연동 폐기다. 그 이후 인류는 금융제국의 탄생을 지켜보았으며 이 금융제국은 자신의 금융시스템 안에 모든 인류를 가둬놓고 있다. 이른바 달러 패권은 바로 이때 시작된 것이다. 오늘날 이 금융시스템은 40년을 넘기고 있다. 1971년 이후 우리는 문자 그대로 종이 화폐의 시대에 살고 있다. 국제 화폐인 달러가 금 등 귀금속의 보장 없이 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체제는 오로지 미국 정부의 신뢰도, 그리고 이 체제를 통해 이득을 보려는 국가와 개인들의 지원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간단하게 말해, 미국은 푸른색 종이(지폐)를 찍어냄으로써 세계 도처에서 물질적 부를 획득하게 됐다. 이런 상황은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인류 역사에서 이윤을 얻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외환 거래, 금과 은의 거래, 또는 전쟁을 통한 약탈 등이 있다. 그러나 전쟁 비용은 여전히 엄청나다. 그러나 그저 지폐에 불과한(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통화로 사용되는) 달러가 등장함으로써 미국은 아주 수지맞는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달러와 금의 연동이 파기됨으로써 미국은 마음대로 달러를 찍어낼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찍어낸 달러가 미국 내에 머물러 있다면 심각한 인플레를 유발하게 될 것이다. 반면 달러가 해외로 유출된다면 세계 전체가 미국이 짊어져야 할 인플레의 짐을 나눠 갖는 셈이 된다. 미국의 인플레가 그다지 높지 않은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다. 다시 말해 미국 달러의 해외 유출이 국내 인플레를 희석시키는 결과가 된다. 그러나 달러가 해외로 유출되기만 한다면, 그리하여 미국 정부가 (필요 자금 충당을 위해) 달러를 계속 찍어낸다면 달러 가치는 하락할 것이며 이는 미국에 좋은 것이 아니다. 따라서 연준은,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미친 듯이 달러를 찍어내지는 않는다. 사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는 (달러 발행에 관한) 여러 제한들을 충분히 알고 있다. 창립 이후 지난 100년간(1913~2013) 연준은 모두 10조 달러를 발행했다.

 

이와 비교하여 일부 사람들은 중국 중앙은행을 (통화 발행량이 너무 많다고) 비난한다. 왜 그런가? 중국 중앙은행은 1954년 신화폐(런민비: 人民幣)를 발행하기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120조 위엔을 발행했다. 미 달러와의 환율 6.2를 적용하면 약 20조 달러가 된다. 이처럼 발행 액수가 많다고 해서 중국이 미친 듯이 화폐를 남발한 것은 아니다. (1970년대 말)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은 엄청난 액수의 달러를 벌어들였고 또한 많은 금액의 달러가 직접 투자의 형태로 중국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외환 통제를 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달러가 원래 형태로 중국에서 유통되지 않는다. 중앙은행이 달러나 다른 외환을 보유하는 대신 그 가치에 상응하는 런민비를 발행한다. 물론 외국인 직접투자는 그들이 중국에서 돈을 번 후 자유롭게 국외로 반출할 수 있다. 또한 중국으로서는 외국에서 자원, 에너지, 상품, 기술들을 수입하기 위해 외환이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상당액의 달러는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런민비는 중국 국내에 남는다. 국내에 유입되는 외환 액수에 해당되는 런민비를 그냥 없애버릴 수는 없다. 중국 내에서 유통되도록 남겨놓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런민비의 규모가 달러보다 커지게 된 것이다. 사실 이는 지난 30년간 중국이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중국 중앙은행은 최근 수년간 아마도 20조 위엔 이상을 발행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 어마어마한 액수의 대부분은 중국 내에 머물러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런민비의 국제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2) 달러 가치의 순환과 세계경제와의 관계

 

미국이 인플레를 겪지 않는 주요한 이유는 달러를 전 세계적으로 유통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도 달러를 무한정 발행할 수 없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달러 발행을 조절해야 한다. 달러 발행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은 달러를 충분히 확보할 수 없다는 뜻인데 그 경우 미국은 어떻게 달러를 확보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 미국은 나름대로의 해법을 갖고 있다. 달러 표시 채권을 발행해 외국에 나가 있는 달러를 미국으로 다시 끌어 모으는 것이다. 그리고 외국의 달러가 부채 형태로 미국으로 되돌아올 때, 미국은 새로운 수법을 동원한다. 한쪽에서는 달러를 찍어내고 다른 한쪽에서는 달러를 빌리는 것이다. 돈을 찍어내도 돈을 벌고 돈을 빌려도 돈을 번다. 돈으로 돈을 버는 것이다. (제조업 등) 실물경제보다 금융을 통해 훨씬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면 어느 누가 고된 땀을 흘려가며 부가가치가 낮은 제조업이나 가공업을 하려 하겠는가? 1971년 8월 15일 이후 미국은 점차 실물경제를 포기하고 가상경제(virtual economy)로 옮겨갔다. 오늘날 미국 GDP는 연간 18조 달러에 이른다. 이 가운데 실물경제 몫은 5조 달러가(27.7%) 채 안 되며 나머지는 가상경제에서 창출된 것이다. 미국은 채권 발행을 통해 해외의 달러를 미국으로, 더 정확하게는 다음 3개의 자금시장으로 불러온다. 선물시장, 채권시장, 주식시장이 그것이다. 이런 식으로 미국 달러는 달러를 버는 황금알이 된다. 미국과 해외를 순환하면서 이윤을 남기며 이를 통해 미국은 금융제국이 된 것이다. 미국은 세계 금융시스템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영 제국의 몰락 이후 식민지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끝났다고 생각한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미국이 금융제국이 된 이후 달러를 은폐된 '식민지적' 팽창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달러를 통해 각국 경제를 통제하며 세계의 다양한 나라들을 자신의 금융 '식민지'로 만들었다. 오늘날 세계에는 중국을 비롯해 주권을 수많은 독립 국가들이 있다. 이들 국가들은 주권과 함께 독자적 헌법과 정부를 가지고 있지만 달러의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각 나라의 부는 달러로 표시되며, 이렇게 달러로 표시된 물질적 부가 외환 거래를 통해 미국을 드나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계는 미국 달러의 금융 식민지

 

지난 40여 년간 달러 가치의 변동을 통해 이러한 실상을 명확히 볼 수 있다. 1971년 8월 15일 달러-금 연동이 폐기됨으로써 금의 족쇄에서 벗어난 미국은 마음대로 달러를 찍어낼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달러 유통량은 늘어났고 자연히 달러 가치는 떨어졌다. 1971년 이후 특히 1973년의 석유파동 이후 달러 가치는 떨어졌다. 이는 미국이 달러를 많이 발행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이 10년 가까이 지속됐다. 달러 가치의 하락이 세계 경제에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달러의 공급이 늘어났고 이는 유동자본의 증가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 유동자본의 대부분은 미국 내에 머물지 않고 대부분 외국으로 나갔다. (1970년대에는)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서 대규모 자본이 라틴아메리카로 갔다. 이에 따라 중남미는 투자가 늘어났고 번영을 누렸다. 197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경제 붐은 이렇게 해서 조성된 것이다.

 

달러 홍수의 시대는 약 10년간 지속됐다. 1979년 미국은 달러의 수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달러 가치가 낮다는 것은 미국이 달러 저수지의 수문을 열었음을 의미한다. 반대로 수문을 닫는다는 것은 달러 유동성이 감소되는 것을 뜻한다. 1979년 달러 가치가 상승했고 외국으로의 달러 유출도 줄어들었다. 라틴아메리카는 많은 금액의 달러를 받아들여 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달러 수문이 닫히면서 갑자기 투자가 줄어들었고, 유동성이 고갈됐으며, 경제는 곤경에 빠지게 됐다.

 

곤경이 시작되자 각 나라들은 탈출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의 예를 들어보자. 당시 아르헨티나는 1인당 국민소득이 선진국 반열에 들어있었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의 경제위기가 시작되자 아르헨티나는 가장 먼저 침체에 빠졌다. 경기 침체의 해결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당시 아르헨티나 정부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부였고 갈티에리 대통령은 경제에는 문외한이었다. 군인인 갈티에리가 생각해낼 수 있는 해법은 오직 하나, 전쟁이었다. 그는 전쟁을 통해 경제 위기를 탈출하고자 했다. 그래서 본토에서 600km 떨어진 말비나스제도(영국명 포클랜드 제도)를 영국으로부터 탈환하려 했다. 갈티에리는 지난 100년간 영국이 영유권을 주장해온 말비나스가 아르헨티나 영토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는 미국의 뒷마당이라는 남미의 국가다. 따라서 미국의 뒷마당에서 전쟁을 하려면 우선 미국의 허락을 얻어야 했다. 갈티에리의 측근은 이 문제에 대한 당시 레이건 대통령의 의중을 떠보았다. 레이건은 말비나스를 탈환하려는 갈티에리의 계획이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대규모 전쟁으로 비화할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문제는 아르헨티나와 영국의 양자 간 문제이며 미국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아무런 입장이 없다. 우리는 중립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갈티에리는 이를 미국의 묵인으로 받아들였고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켜(1982년 4월 2일) 손쉽게 포클랜드를 되찾았다. 아르헨티나의 모든 국민들이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그러나 대처 당시 영국 총리가 반발했다. 대처는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점유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레이건에 대해서 입장을 분명히 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레이건은 중립이라는 가면을 벗어버리고 아르헨티나의 행동은 침략에 해당된다며 강력하게 비난했다. 영국 편을 든 것이다. 이후 영국은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항공포함을 파견해 포클랜드제도를 회복했다.

 

그동안 달러 가치는 상승하기 시작했고, 국제 자본은 미국의 소망대로 미국으로 되돌아 왔다. 포클랜드 전쟁이 발발하자 국제 투자자들은 즉각 결론을 내렸다. 라틴아메리카에 지역적 위기가 발생했고 따라서 이 지역의 투자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고. 하나 둘, 투자자들은 라틴아메리카에서 투자금을 회수해 갔다. 그 순간 미 연준은 미국 금리의 인상을 발표했다. 미국 금리의 인상이 발표되자 라틴아메리카에서 회수된 투자금이 갈 곳은 뻔해졌다. 미국이다. 라틴아메리카의 경제는 폐허가 됐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철수한 자본은 거의 모두가 미국의 3대 자본시장(채권, 선물, 주식)으로 향했고 미국은 (1971년) 달러-금 연동 폐기 이후 최초의 호황을 맞았다. 달러 환율은 60포인트, 그 다음에는 한번에 120포인트가 올라 100% 이상 상승했다. 미국의 3대 자본시장은 돌아온 달러를 그냥 갖고만 있지 않았다. 라틴아메리카로 몰려가 경제위기로 헐값이 돼버린 고급 자산들을 대거 사들였다. 이렇게 해서 라틴아메리카 경제를 다시 한 번 약탈한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달러 강세가 일으킨 상황이다.

 

이런 일이 한 번 일어났다면 우연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일어난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종의 의도된 결과, 정형화된 사례임에 분명하다. 첫 번째 달러 가치의 순환 사이클-10년의 달러 약세와 6년의 달러 강세-당시 사람들은 이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라틴아메리카 금융위기의 절정기 이후 1986년부터 달러 가치는 다시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의 금융위기(1990년)와 유럽의 통화위기(1992년)가 있었지만 달러 가치는 계속 하락했다. 약 10년이 지난 후인 1997년 달러가 다시 강세로 돌아섰다. 이번에도 달러 강세는 6년간 지속됐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달러 가치의 하락과 상승이 동일한 패턴을 보인 것이다. 10년의 약세, 6년의 강세, 그리고 다시 10년의 약세, 6년의 강세.

 

지역 위기 조장, 달러의 미국 환류, 금융 이익 획득

 

1986년 이후 달러는 두 번째로 약세로 돌아섰다. 이후 10년 동안 달러는 홍수처럼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번에 달러의 홍수가 밀려간 곳은 아시아였다. 1980년대에 가장 유행했던 말이 무엇인가? "아시아의 4마리 용" "아시아의 기러기 대열(일본 경제의 선도 하에 동아시아 경제가 발전했다는 뜻)" 등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아시아의 번영이 부지런하고 똑똑한 노동자, 그리고 탁월한 사업가적 기질 덕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었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대대적 투자가 가능할 만큼 충분한 달러가 아시아 국가들에 유입됐기 때문이었다. 아시아 경제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을 때, 미국은 이제 그 과실을 수확할 때가 됐다고 느꼈다. 1997년까지 만 10년 동안 달러 가치는 약세에 머물러 있었다. 바로 이때 미국은 아시아에 대한 달러 공급을 줄임으로써 달러 약세를 강세로 전환시켰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 기업들, 그리고 산업들은 심각한 유동성 부족을 겪었고, 일부는 파산했으며 아시아에 경제 및 금융 위기의 징후가 나타났다.

 

이번에도 주전자 속의 물은 99도까지 올라가 있었다. 1도만 더 올리면 물은 끓을 터였다. 그 1도를 위해서 (포클랜드전쟁과 같은) 지역적 위기가 필요했다. 반드시 전쟁일 필요는 없었다, 전쟁이 지역적 위기를 촉발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목표는 아시아 지역에서 자본을 철수시키는 것이었으므로 전쟁 없이도 지역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소로스와 같은 금융투기꾼, 그가 운영하는 퀀텀 펀드, 전 세계의 수 백 개 헤지 펀드들이 마치 굶주린 늑대 떼처럼 아시아 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였던 태국의 바트화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트 위기가 시작된지 약 1주일 만에 위기의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남쪽으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덮치더니 다음에는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중국, 타이완, 홍콩, 일본, 한국, 그리고 러시아까지 위기가 퍼져나갔다. 동아시아 금융 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물은 끓기 시작했다. 국제 투자자들은 아시아의 투자 환경이 악화됐다고 결론 내리고 아시아로부터 자본을 빼내갔다. 기회를 잡은 미 연준은 금리 인상의 나팔을 불었다. 아시아에서 철수한 국제 자본은 다시 미국의 3대 자금시장으로 물려들었고 미국 경제는 두 번째 대호황을 누리게 됐다. 충분한 자금을 끌어 모은 미국은, 이전에 라틴아메리카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시아로 돌아와 헐값이 돼버린 고급 자산들을 대거 사들였다. 이것으로 아시아 경제는 재기의 힘을 잃어버린 채 완전히 무너졌다. 오로지 중국만이 금융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았던 탓이다.

 

3) 다음은 중국 차례

 

이후 6년간의 강세 끝에 2002년부터 달러는 약세로 돌아섰다. 이전의 패턴을 정확히 반복한 것이다. 미국은 10년이 지난 2012년부터 달러 강세로의 전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방법은 여전히 과거와 동일한 것이었다. 지역 위기를 초래하는 것이다. 2010년의 천안함 침몰, 이후 댜오위다오(센가쿠열도)와 황유안(스카보로) 등 중국 인근 해역에서의 중국-일본, 중국-필리핀 간의 영토분쟁이 그것이다. 이 모든 사건들이 아주 짧은 기간 안에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는 아주 재수 없게도 2008년 국내에서의 불장난으로(주택담보 불량 금융대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이 때문에 달러 강세가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중국-필리핀, 중국-일본 간의 영토 분쟁이 달러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도대체 3번째 달러 약세가 끝나가는 시점에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해본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 문제야말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사안이다.

 

만일 우리가 1971년 달러-금의 연동 폐기 이후 달러 가치의 변화에 일정한 순환 패턴이 있었고, 미국이 이 패턴을 이용해 다른 나라의 경제를 파괴하면서 막대한 금융 이윤을 얻어갔다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다음 차례는 중국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왜 그런가? 중국은 매력적인 국제 투자처로 중국 경제에 낙관적 전망을 가진 국제 투자자들이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법칙의 관점에 보자면, 중국은 국가 규모의 경제를 넘어선다. 현재 중국의 경제 규모는 라틴아메리카 경제 전체보다도 크며 동아시아 경제의 절반에 해당된다. 게다가 지난 10년간 엄청난 자금이 중국에 몰려들어 중국 경제는 눈부신 속도로 성장하면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이런 사실들을 놓고 볼 때, 미국이 중국을 3번째 공격 대상으로 삼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상과 같은 평가가 정확한 것이라고 한다면, 2012년 이후 중-일 간의 댜오위다오 영토분쟁, 중국-필리핀 간의 황유안 영토분쟁, 그리고 지난해 '981 광구'를 둘러싼 중국-베트남 영토 분쟁과 이후 홍콩 청년, 학생들의 민주화 시위('오큐파이 센트랄' 운동)에 이르기까지 중국 인근 지역에서 분쟁과 소요가 잇따라 발생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이 과연 순전히 우연일까? 지난해 5월 나는 국립국방대학의 정치주임인 류야조우 장군을 모시고 홍콩을 연구차 방문한 바 있다. 당시 이미 '오큐파이 센트랄' 운동은 달아오르고 있었고 5월말에는 시작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5월말, 시위는 시작되지 않았다. 6월말, 7월말, 8월말에도 시작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달아오르고 있었던 민주화 시위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다른 사안과의 일정표를 비교해보자. 미 연준의 양적 완화(QE) 종료 시점이 그것이다. 지난해 초, 미국은 양적 완화 종료를 예고했다. 그러나 4월, 5월, 6월, 7월, 8월이 지나도록 미국은 양적 완화 종료를 선언하지 않았다. 미국이 양적 완화를 종료하지 않았다는 것은 달러를 더 많이 발행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래서는 달러가 강세로 돌아설 수 없다. 바로 이 때문에 홍콩의 '오큐파이 센트랄' 운동은 시작되지 않은 것이다. 사실 댜오위다오, 황유안, 981 광구, 그리고 홍콩 민주화시위 등 4개 사안은 하나 하나가 폭발적 사안들이다. 이중 하나라도 위기로 발전한다면 동아시아의 지역 위기를 초래했을 것이고, 중국을 둘러싼 지역의 투자 환경은 악화된다. 그렇게 된다면 달러 패권에 의한 금융 수입 모델의 기본 조건을 완전히 충족시켰을 것이다.

 

"달러 가치가 상승했을 때, 다른 지역에서는 위기가 발생한다. 위기 발생으로 투자 환경이 악화되면 그 지역의 대규모 투자가 그곳을 떠나 미국으로 몰려든다"는 시나리오가 그것이다.

 

하지만 미국으로서는 불운하게도 이번에는 중국을 상대로 해야 했다. 중국인들은 태극권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즉 주변 지역의 문제들을 하나하나 순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현재까지의 결과는 미국이 원했던 상황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물의 온도를 99도까지는 올렸지만 마지막 1도를 올리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물은 아직 끓어오르지 않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우크라이나로

 

물이 끓지 않는다면 미 연준은 금리를 인상할 수 없다. 아마도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금융 이윤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미국은 그저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다. 미국은 홍콩의 '오큐파이 센트랄' 운동을 은밀히 지원하는 한편 다른 지역에서 위기를 조장하는 공작을 시작했다. 어느 곳인가? 우크라이나다.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만나는 곳, 우크라이나다. 당시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통치했던 우크라이나는 그 자체로는 썩 좋은 먹잇감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공격 대상으로 삼은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우선 미국에 순종하지 않는 야누코비치를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사태를 빌미로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관계 강화를 막을 수 있다. 나아가 우크라이나에 위기가 발생한다면 유럽의 투자 환경이 나빠질 터였다(그리하여 유럽을 떠난 자본은 미국으로 올 터였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은 그야말로 일석삼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우크라이나에서는 외견상 시민들의 자발적 '색깔혁명'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미국은 자신은 물론 지구 상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성과를 얻어냈다. 러시아의 푸틴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빌미로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합병해 버린 것이다. 푸틴의 크림 합병은 미국의 당초 계획에 없었던 것이지만 미국은 이 기회를 낚아챘다. 유럽연합은 물론 일본에 압력을 가해 대러시아 경제 제재에 동참하게 한 것이다. 이로 인해 러시아는 물론 유럽 경제도 커다란 부담을 안게 됐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1조 달러 유럽에서 이탈

 

미국은 왜 이런 일들을 해야만 했을까? 대체로 사람들은 (국제 문제를) 자본의 관점보다는 지정학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의 대유럽, 대미 관계는 급속히 악화됐다. 그러나 동시에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는 유럽의 투자 환경을 악화시켜 대규모 자본 이탈을 초래했다. 통계에 따르면 1조 달러 이상이 유럽을 떠났다고 한다. 미국의 양면 전략(동아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지역 위기 조장)이 성공한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에 머물고 있는 국제 자본을 미국으로 끌어올 수는 없었지만 유럽의 국제 자본을 끌어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극적인 상황 변화로 유럽의 국제 자본을 이탈시키는 데까지, 즉 1단계는 성공했지만 2단계는 미국의 소망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통계에 따르면, 유럽을 탈출한 국제 자본이 미국으로 간 것이 아니라 대부분 홍콩으로 갔기 때문이다. 이는 국제 투자자들이 아직 미국의 경기 회복 전망을 낙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최근 들어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긴 하지만 중국 경제에 더 큰 희망을 걸고 있다는 얘기다.

 

이상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첫 번째 요지다. 두 번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상하이와 홍콩 주식시장의 연계 계획을 발표했다. 두 주식시장의 연계를 통해 국제 투자자들의 중국 투자를 보다 쉽고 효율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과거 서방 자본은 감히 중국 주식시장에 뛰어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중국의 강력한 외환 통제로 자금 회수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이제까지 국제 자본이 중국에 들어오는 것은 자유지만 나가는 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국제 투자자들은 중국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를 꺼렸다. 그러나 상하이와 홍콩의 주식시장이 연계됨으로써 홍콩을 통해 상하이 주식시장에 투자해 돈을 번 다음에는 자유롭게 떠날 수 있게 됐다. '오큐파이 센트랄' 운동이 시작된 지난 해 9월 이후 홍콩에 몰려든 국제 자본은 1조 달러가 넘는다. 이 때문에 앞으로도 '오큐파이 센트랄' 운동은 결코 종식되지 않을 것이며 언젠가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겨냥한 지역 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 홍콩에 몰려 있는 국제 자본이 중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 이윤으로 먹고 사는 미국

 

미국 경제가 국제 자본의 흐름에 그토록 크게 의존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971년 8월 15일 달러-금의 연동 폐기 이후 미국 경제가 실물 생산, 그리고 실물 경제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저부가가치의 제조업 등 실물경제를 쓰레기산업, 또는 사양산업이라고 부르며 이들 제조업 등을 개발도상국, 특히 중국으로 이전시켜 왔다. 나아가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 이른바 첨단산업 부문을 빼놓고는 일자리의 70%를 금융 및 금융서비스 부문으로 옮겼다. 이제 미국은 제조업 등 산업 부문이 공동화됐으며 국제 투자자들에게 큰 이윤을 보장해줄 수 있는 실물경제를 갖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미국은 경제의 다른 출구를 찾아야 했다. 바로 가상경제다. 가상경제는 3개의 시장을(선물, 채권, 주식) 갖고 있다. 국제 금융 자본이 이 3개의 시장에 머물러 있는 한 미국은 이윤을 창출해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창출된 막대한 이윤으로 세계를 상대로 바가지 씌우기를 계속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미국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다. 또는 이를 '미국적 생활방식'이라 부를 수 있겠다. 미국인의 일상적 생존과 미국 경제의 유지를 위해 미국은 대규모 자본의 미국 회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자본의 미국 회귀를 막는 모든 것들은 미국의 적이다. 우리는 이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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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가소성이 있는 장기다. 훈련시키기 나름으로 역할과 기능 패턴이 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아이들처럼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성장하진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자극을 가하면 조금씩 변화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뇌는 어떤 방법으로 활성화할 수 있을까. 신경과학자들의 연구결과들을 중심으로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읽기=뇌는 말이 안 되는 황당한 상황에 닥쳐 불안감이 들 때 보다 활성화되는 경향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산타바바라 캠퍼스 심리학과 연구팀이 학술지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터무니없는 기이한 내용의 글을 읽는 사람들은 데이터를 분석하거나 새로운 패턴을 학습하는 능력이 2배 이상 향상된다.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비일상적인 상황에 노출되면 뇌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가령 아방가르드 퍼포먼스를 관람한다거나 초현실주의 작품을 접하는 식이다. 낯선 나라로 여행을 가 문화충격을 경험한 사람들은 문제해결능력이 20% 정도 상승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적당한 커피숍 찾기=일리노이대학교의 한 연구에 따르면 쥐 죽은 듯 고요한 곳보다 약간의 소음이 들리는 곳에서 생각을 할 때 좀 더 창의적인 해결책이 많이 나온다. 배경소음이 마음을 산란케 만들면 좀 더 추상적인 사고를 하게 되고 창의성을 강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땐 조용한 도서관을 나와 적당한 소음이 있는 공간을 찾는 방법이 있다. 지나치게 시끄럽다는 느낌보다는 활기가 있다는 정도의 느낌이 드는 공간이 좋다. 소리 세기를 기준으로 보면 70데시벨 정도의 소음이 들리는 공간을 의미하는데 보통 커피숍이 이 정도 소음이 난다. 또 커피에 든 카페인 역시 기억을 상기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유산소 운동하기=신체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근력운동과 유산소운동을 병행해야 한다. 하지만 뇌의 활성화 영역으로 한정한다면 유산소운동이 깊은 연관성이 있다. 일리노이대학교 연구팀이 유산소운동과 다른 운동들을 비교해본 결과, 유산소운동이 기억력 및 집중력과 연관이 있는 뇌 영역의 부피를 증가시키는 효과가 나타났다.

유산소운동이 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를 강화하는 효과적인 운동이라는 것이다. BDNF는 뉴런의 성장을 돕는 단백질을 의미한다. 일주일에 3~4시간 정도 조깅, 산책, 자전거타기 등의 유산소운동을 하면 뇌와 신체 건강을 모두 향상시킬 수 있다. 연구팀에 따르면 좀 더 짧은 시간 고강도운동을 하는 것 역시 BDNF를 증가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혼자 중얼거리기=혼자 중얼거리는 모습을 상상하면 보기 좋지 않다는 느낌이 들지만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수준이라면 뇌를 활성화하는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 대화를 나누듯 말을 하는 것이 뇌를 강화하는 한 방법이라는 것이 그리스 테살리아대학교 연구팀의 설명이다. 이러한 방법이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스포츠를 할 때 수행능력을 높인다. 새로운 것을 학습하거나 수행능력을 강화할 때 혼자 중얼거리면 보다 효과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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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Big Questions] 무한에서 수 십 명, 다시 단 한 명으로 줄어든 신들의 역사, 그 다음은?

http://mnews.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total_id=1701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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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았다 일어나는 간단한 동작만으로 사망위험을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3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브라질 가마필호대 클라우지우 질 아라우주 교수 연구진이 개발한 이 방법은 근육의 힘과 균형감각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방법은 단순하다. 맨발로 허리를 펴고 선 다음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앉았다 일어난다. 혼자 균형을 잡으면서 오로지 다리 힘으로 앉았다 일어나는 것이다. 총 10점 만점을 기준으로 손이나 무릎, 팔꿈치 등이 바닥에 닿거나 했을 때 1점을 뺀다. 또 균형을 잃고 흔들리면 0.5점을 뺀다. 연구진이 이 같은 방식으로 51∼80세 2000여명을 상대로 연구를 한 결과 8점 미만의 점수가 나온 사람들은 10점을 받은 사람보다 향후 6년 내 사망할 확률이 2배 높았다. 점수가 5점 미만인 사람들은 8점 미만자 중에서도 6년 내 사망위험이 5배 더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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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시대, 남자가 사는법(24]아내의 샤워소리, 가슴 철렁한 당신생식은 끝나도 섹스는 끝나지 않았다

A씨는 "에이, 가족끼리 어떻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남자들은 나이가 먹어가면서 "한다"와 "안한다"로 갈린다. 부부관계 얘기다. 주변에 보면 섹스리스 부부가 많아진다.

 "안한다"는 다시 두부류로 갈린다. "진짜 안한다"와 "안된다"다. A씨는 부부관계에서 섹스는 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부부관계는 순간의 쾌락을 넘어서는 뭔가, 지고지순한 동지적 관계라고 열변을 토한다. "함께 자고 싶은(섹스하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함께 잠들고 싶은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 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깐다. 아내는 그런 여자라나. 양기가 입으로 올라온 게 확실하다. 그래도 멋져 보인다. 소설가 밀란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쓴 문장을 섹스리스를 합리화하는데 사용한다.

 B씨는 "한다"파의 지존이다. B씨는 이런 얘기 귀담아 듣지도 않고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을 뿐이다. B씨는 휴가 때 '놀자당' 친구들과 설악산에 1박2일 여행을 갔다. 골프, 술, 카드라는 잡기 3종경기를 치르기 위해서다. 그는 주말부부였다. 아내가 속초에 파견 나와 있었다. 하루 일찍 속초에 간 그는 설악산 등반을 마치고 부부의 정을 나눈 뒤 골프장에 합류했다. 골프장에서 친구들을 혼내주면서 자기는 철인5종을 했다고 설레발을 쳤다. 그래서 철인5종이다. B씨는 이런 무용담 덕분에 철인5종이란 별명도 얻었다.

 A씨가 "진짜 안한다"가 아니라 "잘 안된다"라는 사실을 둘의 대화에서 알게 됐다. A씨와 B씨는 둘 다 탈모 치료를 위해 전립선 치료제 프로스카를 복용하고 있다. 전립선 치료제인 이 약을 먹으면 머리털이 나기 때문이다. 대신 발기부전이나 성욕 감퇴 등의 성기능 장애를 유발하기도 한다. A에게 잠시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탈모 치료약으로 나온 같은 성분의 프로페시아를 먹으면 되는데 비싸다. 프로스카는 잘라 먹어야 하는데 여자에게는 닿기만 해도 위험하다." 그들의 대화는 싸니까 조심해서 프로스카를 먹으면 된다, 성기능장애는 일시적이니 머리털이 났으면 잠깐 쉬었다 다시 먹어라는 내용으로 압축된다. 나와는 관계 없는 얘기지만 돈(절약), 외모(머리털), 건강(부작용), 섹스(발기부전)라는 중년 남성의 원초적인 관심사가 알약 하나에 압축돼 있다는 생각에 귀담아 들었다.

 성에 대한 중년 남성의 갈망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영국의 생식생물학자 데이비드 베인브리지는 그의 저서 '중년의 발견' 속 '생식은 끝나도 섹스는 끝나지 않는다'라는 장에서 "성이 아기 만드는 기능을 잃게 되면 남는 것은 인간성뿐이다"라고 주장한다. 생식에서 시작한 섹스가 생식기능이 없어져도 계속되는 게 인간의 본성이란 얘기다.

 동물의 왕국을 예로 들면 쉽다. 표범은 2주간 암수가 교미를 하고 헤어진다. 암표범은 2년간 새끼를 배고, 낳고, 양육하고, 독립시킨다. 그 뒤에 발정기를 맞아야 수컷을 찾는다. 인간만 생식과 관계없이 주구장창 붙어있고 생식은 끝나도 섹스를 끝내지 않는다.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덤벼드는 남편에게 "이놈의 짐승"하면 안된다. "이놈의 인간"이 맞는 표현이다.

 생물학자들은 인간 숫컷이, 인간 암컷을 떠나지 않고 주변에 맴도는 이유를 숫컷이 아닌 암컷의 진화에서 찾는다. 모든 짐승의 암컷들은 발정기를 숫컷에게 드러내놓고 알린다. 반면 여성들만이 발정기를 숨기도록 진화했다. 암컷의 발정기를 모르는 수컷은 인간이 유일한 셈이다. 발정기를 숨겨 자손을 원하는 숫컷을 붙잡아 놓고 계속 교미하고, 먹을 것을 가져오고 보살피도록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동물들은 다 대놓고 야합(野合)을 하는데 인간만 야합을 욕하는 이유도 숨기도록 고안된 본능 때문이다.

 인간이 이성을 밝히는 이유가 밝혀졌다. 생식은 끝나도 섹스는 지속되는 이유는 너무도 인간적이다. 이렇게 만든 원흉이 여성의 진화인 셈이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밝힘증에 막대한 책임이 있다. 여성도 마찬가지다. 남성을 길들이기 위해 진화한 데 이어 피임을 통해 기능으로서의 생식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 A씨는 약을 끊은 뒤 연애세포가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아내가 가족이 아닌 여자로 보이기 시작한다. 심장병약의 부작용으로 발견된 비아그라를 찾기 시작한다. 인간적으로 변했다.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없는 사랑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도종환,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사랑은 거품이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보면 비너스는 거품위에 서있다. 그리스신화에서 비너스는 아프로디테다. 아프로디테의 뜻이 거품이다. 비너스는 거품에서 탄생했다. 아름다움도 사랑도 다 거품이다.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순간의 화사함보다 신뢰감, 순간의 열정보다 따뜻함에 기울게 된다. 그렇다고, 시 한 수 읊은 뒤 손만 잡고 잘 일은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아내를 다시 애인으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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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음주도 건강에 안 좋다..덜 마실수록 좋아"
영국 연구팀, 음주량과 심혈관 건강 상관관계 밝혀

(파리 AFP=연합뉴스) 한두잔의 술을 마시는 것은 건강에 좋다는 의학적 조언이 애주가들에게 자주 인용되지만 실제는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주목된다.

11일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BMJ)을 통해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가벼운 음주라도 이를 자제하면 관상동맥성 심장질환의 가능성을 줄일 뿐만 아니라 체중을 줄이고 고혈압을 완화하는 효과를 갖는 것으로 밝혀졌다.


↑ (AP=연합뉴스 자료사진)


런던보건대학원의 후안 카사스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유럽계 주민 26만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56편의 논문에서 얻은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알코올 분해 능력과 관련된 유전자 변체 ADH1B에 주목했다.

이 유전자 변체를 가진 사람들은 보통 술을 마시게 되면 체내에 아세트알데히드가 생성돼 구역질과 두통, 안면홍조 등의 불쾌한 징후를 보이게 돼 지나친 음주를 피하는 경향이 높다. 이 유전자 변체는 동아시아 주민들에게서 흔히 발견되지만 유럽인들에게서 발견되는 비율은 7%에 불과하다.

연구팀은 조사 결과, 이 유전자 변체를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음주량이 17% 적고 과음할 가능성도 78%가 낮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ADH1B 유전자 변체를 가진 사람들은 또한 관상동맥성 심장질환에 걸릴 위험도 10%가 줄어들며 심장수축 혈압과 체질량지수(BMI)도 낮았다고 밝혔다.

논문 제1저자인 후안 카사스 교수는 "우리는 소량, 적당량, 다량의 음주 여부에 관계없이 음주량을 줄이는 것과 심혈관의 건강 사이에 상관 관계를 발견했다"면서 이번 연구 결과는 가볍게 혹은 적당하게 음주하는 사람들이라도 알코올 소비량을 줄이면 심혈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량 혹은 적당량의 음주가 건강에 좋다는 믿음에는 허점이 있을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카사스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대해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학계에서는 이번 연구 결과가 통계적 접근에 의존한 것으로, 왜 ADH1B 유전자 변체를 가진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건강한지를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 시도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런던 킹스 칼리지의 유전자역학 전문가인 팀 스펙터 교수는 "유전자 판별은 신뢰성이 떨어지는 설문보다는 행동습관을 평가하는데 더 나은 방법"이라면서도 알코올에 취약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심장질환을 줄여주는 장내 미생물과 같은, 다른 특성이 있을지 모른다고 논평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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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학자들이 신체 각 부위에서 느끼는 성적 흥분의 강도를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조사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고 가디언이 7일 전했다. 

영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공동 연구진은 영국과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환자 약 800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신체 부위 41곳에 대해 성적 민감도를 조사했다. 

과학저널 코어텍스(CORTEX) 온라인판에 발표된 조사 결과는 생식기가 전달하는 감각을 처리하는 뇌 부위에 인접한 신경세포들이 관장하는 기관들이 성감대라는 ‘라마찬드라’ 가설이 틀렸음을 시사하고 있다. 연구진은 조사대상자의 약 75%가 발이 가장 혹은 전혀 성적 흥분을 느낄 수 없는 부위라고 답변한 것을 그 근거로 들었다. 신경학자인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가 주장한 가설에 따르면 대뇌피질에서 발의 감각을 느끼는 부위가 생식기 감각을 느끼는 부위 바로 옆에 있어서 발은 성감대에 속해야 한다. 발을 주무르거나 발가락을 빨면서 애무를 하는 데 정력과 시간을 쏟는 이들이 실망할만한 결과이다.

여성의 성감대가 여러 군데인데 비해 남성의 성감대는 단 하나라는 속설도 과장된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을 이끈 영국 뱅거대학교 심리학과의 올리버 턴벌 교수는 “여성들이 약간의 이점이 있지만 거의 동등하다”며 “성감대의 성차가 크다는 것은 완전히 과장됐다”고 밝혔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081755121&code=970100



연구진은 또 나이, 성별, 성적 취향, 국적과 인종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신체 부위별로 상당히 유사한 성적 민감도를 보이고 있음을 알아냈다. 남녀는 41가지 신체 부위에서 느끼는 성적 흥분의 강도에서 놀랄만큼 유사성을 보였다. 성적 민감도 순위는 성기에 뒤이어 입술, 귀, 허벅다리 안쪽, 어깨뼈 순이었다.

남녀 사이에 일부 큰 차이도 있다. 다리 뒤쪽은 여성들에게 거의 성적 흥분을 일으키지 않지만 남성들은 이 부위를 귀만큼 중요한 부위로 꼽았다. 손 역시 남성이 여성보다 더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것으로 조사됐다. 

턴벌 교수는 “런던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중년의 중산층 백인 여성이든 혹은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동성애자 남성이든 최소한 두 대륙에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성감대를 갖고 있음을 발견했다”며 “성감대가 문화와 생활 경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 각인된 것임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많은 사람들이 과학자들이 이런 것을 들여다봐선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이 흥미있어 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과학자들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턴벌 교수는 신경과학자들은 초당 약 5㎝라는 최적의 애무 속도를 이미 밝혀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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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자본주의에서 위험한 '비즈니스'
시사저널|김지영 기자
입력 14.04.03 18:14 (수정 14.04.03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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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여자의 이혼을 다루는 방송 드라마는 많았지만, 두 번의 이혼을 얘기하는 드라마는 없었다. 여자의 이혼은 여전히 사회적 금기인 탓이다. 그런 점에서 SBS < 세 번 결혼하는 여자 > (이하 < 세결여 > )의 부진은 예상된 결과였다. '시청률 보증수표' 김수현 작가도 이번만큼은 애를 먹었다. 그런데 드라마 < 세결여 > 의 뒷심이 무섭다. 초반 10%대에 머무르던 시청률은 최근 16.7%까지 치솟았다. 동시간대 1위다. 8회 연장도 됐다. 주목할 점은 시청률 상승 시점이다. 극 주인공인 오은수(이지아 분)가 두 번째 이혼을 결심할 때 시청률은 정점을 찍었다.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 뜨거워지면서 드라마 인기가 상승하는 것과는 반대된다.

< 세결여 > 시청자는 '결혼'보다 '이혼'에 더 반응한다. 주로 여성 시청자가 그렇다. 시청률 조사 회사 닐슨코리아의 분석에 따르면 < 세결여 > 의 여성 평균 시청률은 남성보다 2배 정도 높다. 이 가운데 2030세대 여성의 평균 시청률은 15.5%로 < 세결여 > 평균 시청률(12.4%)을 웃돈다. TV를 좀체 보지 않는 2030세대까지 끌어당긴 것이다. 이 점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바로 20~30대 여성의 새로운 연애·결혼관을 엿볼 수 있는 까닭이다. 결혼은 자본주의에서 위험한 '비즈니스'다. 능력과 미모를 겸비했음에도 두 번이나 결혼에 실패한 < 세결여 > 주인공 오은수는 결혼이라는 비즈니스의 위험성을 잘 살린 캐릭터였던 것이다.






ⓒ 일러스트 임성구

동거가 결혼보다 안전하다?

직장생활 7년 차인 연혜진씨(32·가명)는 2년 넘게 사귄 남자친구가 있지만 아직까지 결혼할 생각이 없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취직한 덕에 모아놓은 돈도 1억원이 훌쩍 넘는다. 연소득도 3500만~4000만원대다. 10년 넘게 압구정동 2층 주택에서 살 정도로 집안도 유복하다. 딱히 유별난 독신주의자나 페미니스트도 아니다. 하지만 연씨는 결혼하면 여자가 잃을 게 너무 많다고 믿는다. 특히 출산과 육아를 인생의 무덤이라고 확신한다. 연씨는 "남자친구를 사랑하지만 그와 결혼하는 것은 무섭다"며 "결혼하고 이혼할 수도 있지만 가뜩이나 남성 중심적인 한국 사회에서 '돌싱녀'를 누가 곱게 봐주겠느냐"고 말했다. 동거보다 결혼이 훨씬 위험하다는 게 연씨의 생각이다.

박상희씨(24·가명)는 남자친구와 동거 중이다. 박씨의 남자친구는 미국인이다. 남자친구가 사귄 지 1년째 되는 즈음에 동거를 제안했다. 보통 한국 여성들은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다"고 믿는다. 하지만 박씨는 그것에 거부감이 든다. 살아보지도 않고 결혼하는 게 더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박씨의 부모는 그가 초등학생 때 이혼을 했다. 엄마·아빠를 보고 결혼이 더 싫어졌다. 박씨는 지금의 남자친구 이전에도 다른 남자와 한 달 정도 동거를 한 적이 있다. 박씨가 처음 동거를 한다고 밝혔을 때 "혼인신고라도 먼저 하라"고 친한 친구는 조언했다. 하지만 기겁한 건 박씨였다. "혼인신고는 하나의 문서에 불과하다. 속을 못 들여다보고, 겉으로만 결혼을 유지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같이 살아보니 나하고 잘 맞는 사람도 더 잘 찾게 됐다."

연씨와 박씨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현실에서 결혼의 당위성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결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여성도 늘어나고 있다. 고려대 한국사회연구소가 2011년 발표한 보고서 '여성의 만혼화와 결혼 의향'을 보면, 평균 결혼 적령기가 지난 29~44세 미혼 여성 750명 가운데 절반이 결혼할 필요가 없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결혼하지 않는 여성도 급증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2 한국의 성 인지 통계' 보고서를 보면 25~39세 중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비율은 2000년 18.3%에서 2010년 35.5%로 치솟았다. 결혼도 하지 않고 애도 낳지 않는 여성이 10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결혼의 목적은 '가족'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불공정의 씨앗을 담고 있다. 가족을 뜻하는 영어 단어 family는 라틴어 famulus와 famila에서 유래했다. famulus는 가내 노예를, famila는 한 사람에게 종속된 노예 집단을 뜻한다. 즉 결혼 목적에서 이미 남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삶을 내포하고 있다. 결혼 전 능력 있는 남자를 갈망하고, 결혼 후에는 남편의 바람은 한번쯤 못 본 척하고,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기 위해 이를 악물고 가사노동을 인내한다. '현모양처 신사임당'이 5만원 지폐에만 살아 있는 게 아니다. 각 가정에 여전히 유효하다. 잘난 남자를 만나기 위한 신데렐라가 결혼 후 신사임당으로 나이 들어갈 뿐, 이 둘의 본질은 같다.






결혼을 더 무서워지게 하는 세상

자본주의에서 결혼에 대한 여성의 공포심은 더 커진다. 독일 출신 여성학자 마리아 미즈가 <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 에서 지적했다. 남성에 비해 임금이 낮은 여성에게 결혼과 자동으로 딸려오는 시댁 부양, 남편의 경제적 무능 등은 호환마마보다 더 두렵다.

국립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정은영씨(30·가명)는 9급 공무원 남편과 지난해 결혼했다. 남들은 안정된 정씨 부부를 부러워하지만 정씨는 남편과의 결혼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시댁 때문이다. 정씨의 시아버지는 비정규직 경비 일을 하고 있는데 이게 시댁 수입의 전부다. 정씨는 "남편이 장남인데 시부모를 모실 자신이 없어서 신혼집 구할 때도 시댁에 일절 손을 벌리지 않았다"며 "시댁에서 아직까지 돈을 요구한 적은 없지만 혹시나 아프실까 봐 걱정이다"고 솔직한 마음을 토로했다.

서울 마포에 25평대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골드미스 장영지씨(40·가명)는 이젠 연하가 싫다. 예전에 연하에게 한번 데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누나라서 처음엔 챙겨줬는데 점점 상대가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게 느껴졌다. "너무 부담스러웠다. 직장생활을 하며 내 몸 건사하기도 버거운데 이 친구와 결혼하면 두 배로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이기적인 게 아니다. 경제력은 결혼하는 데 필요충분조건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2013년 발표한 '이상적 배우자' 보고서에서는 경제력이 두 번째로 중요한 결혼 조건에 올랐다. 성격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미혼 남녀는 2012년 59.6%에서 2013년 36%로 줄어들었다. 반면 경제력은 2012년 9.3%에서 2013년 14.9%로 증가했다. 전체 한국 사회에서 이혼하는 이유 2위가 경제력이다. 2011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전체 이혼 건수 12만3999건 중 1위는 성격차이, 2위 경제 문제, 3위 배우자 부정, 4위 가족 간 불화, 5위 정신적·육체적 학대로 나타났다.

이시연씨(31·가명)는 친한 친구를 통해 여성 경제력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이씨의 친구는 지난해 결혼한 지 3년 만에 이혼했다. 친구는 남편이 이혼하자고 했을 때 수면제 한 통을 먹고 응급실에 실려 가고 우울증으로 심리치료를 받았다. 이씨는 "친구가 전업주부였는데 이혼으로 수입이 끊기고 결혼 기간이 길지 않아 위자료도 많이 못 받은 데다 이혼녀 딱지가 붙어 취업도 힘들었다"며 "결혼하면 가사와 일을 함께 하기 어려운데 친구를 보니 결혼하기가 더욱 조심스러워진다"고 말했다.

서울대 여성복지 분야 박사과정에 있는 유자영씨(32)는 "평소 여성학에 관심이 많은 나조차 결혼을 결심할 때는 무서웠다. 진취적이고 당당한 여성 시대라는 사회적 이미지는 결혼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의 진짜 속마음을 감추기 위한 포장 같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 abc@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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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이런일이...
사람이 죽기전까지 벌어지는 상황을 설명한 글..
정말 이렇게 보니 뭔가 좀 특별한 느낌이 드는.. 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과연 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가 몰랐던.. 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아래 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보시죠 

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이건 당신이 바로 죽기 일보직전까지 벌어질 상황입니다.

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사람은 결국 죽는다. 안타깝게도,

죽음이후의 세계는 아직 밝혀진것이 없다.
영원히 의식이 없고 이미 당신은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할수있는 무로 돌아갈수도.
종교에서 말하는 사후세계가 거짓일수도 있다.




다만, 죽기 일보 직전까지의 상황은 이미 과학이 많이 밝혀낸것이 사실.

고등동물이 죽는 과정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뇌와 심장의 정지가 중요한 사망 요인이다.


의사는 대개 뇌의 정지를 죽음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간주한다.
뇌는 생명체 전체의 활동을 조절하는 부위로, 

이곳의 기능이 멈추면 몸 전체의 기능이 차례로 정지돼 결국 완전한 사망에 이른다.


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뇌가 멈추고 소뇌가 멈추면 이윽고 심장마비, 호흡 곤란단계로 넘어간다.
소뇌가 죽으면 호흡조절이 어렵게 되기 때문.
아니면 호흡곤란으로 뇌가 멈출수도 있고.


산소가 공급되지 못하면 혈액 속 산소농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산소가 각 조직으로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면 조직의 세포가 차례로 죽는다. 


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이때 인간은 최후의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뇌세포가 집중적으로 사망을 하게 되면 사망시의 죽음을 해소시키기 위해
죽기전 이상 발달 마약 물질을 분비하게 되는데.


이 물질은 인간이 개발한 최고의 진통제인 모르핀의 약 수백배의 효과가 있으며
사람이 주로 웃을때, 또는 극한 상황에 왔을때 이 물질이 조금씩 초 극미량~보통량 으로 분비 되기도 한다.


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운동선수나 일부 탐험가들은 이 엔돌핀의 분비를 경험하기 위해 자신을 죽음의 직전까지 몰고 가거나,

다른 일부의 사람은 이 극적인 쾌감을 인위적으로 체험하기 위해 폐속의 공기를 제거하고 자신의 목을 졸라
뇌세포를 급격히 사망시켜 이 물질을 분비시키려고 노력한다.


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죽음의 고통을 잊게 하는 이 마약 물질은 엔돌핀이다
이 어마어마한 쾌락물질은 순식간에 몸을 진정시키고 죽음에 대한 마지막 관문을 연다.


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사후세계는 있을까?


사후세계를 넘나들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죽는 순간 

편안해 지면서 시야가 하얀 빛으로 환해졌다고 하는데.
이는 진짜 죽은거라기 보단 엔돌핀의 초과다 분비로 인한
뇌의 전기활동이 최대로 증폭된 "최후의 자폭"으로 보는게 더 맞다.
단, 일격에 객사하는 경우엔 예외다. 이런 과정은 죄다 생략된다.


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죽은 사람들이 간다'고 여겨지는 곳. 과거부터 많은 종교에서 사후세계를 믿어왔고 지금도 믿고 있다. 

동양에서는 음양론적으로는 죽은 뒤의 혼은 하늘로, 백은 땅으로 들어가 

3년간 머무른다고 믿었으며 특히 조상신은 후손을 수호한다고 믿었다(3년상의 근거).

죽은 귀신은 '죽은 자가 성불하여 사후세계로 간다'고 믿으며, 성불하지 않은

영혼은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돈다.


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혹은 이러한 시기 영혼은 저승으로 들어가 심판받으며 이에 따라 윤회하거나 천국,

지옥 등으로 배정받기도 한다. 이는 불교의 영향이 강해보인다.

과학적으로 인간의 의식은 뇌라는 물질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밝혀졌으므로 사후세계는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죽어서 뇌가 죽으면 뇌가 만드는 의식도 소멸한다.

염라대왕에게 빌어서 살아 오거나, 조상님이 구해줘서 눈 떴다거나 하는 등,

말 그대로 '죽다 살아난 뒤' 사후세계를 체험했다는 식의 증언들이 여럿 나돌기는 하지만. 

다만 거의 대부분의 임사체험 일화에서 공통된 특징이 있다면 

저승으로 가는 길이 굉장히 어둡다는 점이며, 저승의 강이 흐른다는 것이다.

(저승 설화에서 전 세계에 걸쳐 등장하는 모티브이다.) 


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죽기 전까지 벌어지는 상황


덧붙여 사후세계를 봤다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사후세계는 대부분 그 문화권의 

저승의 이미지 혹은 그 사람이 믿던 종교의 사후세계의 이미지를 닮는다. 


이러한 점으로 볼때 사후세계를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실제로 본것은 

사후세계가 아니라 자신의 뇌가 만들어낸 이미지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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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media.daum.net/m/media/society/newsview/20140208093005868

두 달을 못 버티고 요양원을 찾았다
한겨레|
입력 14.02.08 09:30 (수정 14.02.0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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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토요판]


가족 / 할머니의 치매

▶ 얼마 전 한 아이돌 가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할머니가 함께 생을 마감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가수의 아버지는 치매에 걸린 자신의 아버지와 암에 걸린 어머니를 더이상 부양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지요. 사건을 본 우리 가족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자살을 두고 흔히 하는 '목숨이 그리 가볍냐'는 비판도, '안쓰러워 어쩌누'라는 위로도 할 수 없었어요.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들이 겪었을 고통을 조금은 알기 때문입니다.


"언니, 어딜 나가? 어제랑 그제도 내가 할머니 당번했잖아."

"미안해. 남자친구 오랜만에 만나는 거 알잖아. 한번만 봐줘."

"진짜 이기적이다. 나도 오늘 약속 있다고. 할머니보다 남자친구가 더 중요해?"

"카드 줄 테니까 할머니 맛있는 거 사드려. 나 갈게."

"야 이 싸가지 없는 년아. 언니! 야!"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왔다.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할머니를 모신 지 두달 만에 우리는 지쳐 있었다.

효자라면 효자였다. 아버지를 비롯한 6남매는 부모에게 자주 찾아가는 편이었고 용돈도 적지 않게 드렸다. 입만 열면 '우리 어머니 같은 사람 없다'는 말을 하고 하루 한 번 전화도 빼먹지 않았다. 할머니가 동네로 찾아오는 장사꾼들에게 속아 가짜 건강식품이나 게르마늄 옥매트, 불량 청소기 따위를 사들였을 때도 자식들은 그저 웃었다. '우리가 더 자주 찾아뵈었으면 저런 일이 없었을 텐데'라는 반성이 먼저 나왔으니까.

그런데도 할머니는 끝내 자식들의 효성을 시험해보고 싶으셨나 보다. 87살이 되던 해 치매가 찾아왔다. 초기에는 잘 몰랐다. 그저 노인이니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할머니가 압력밥솥에 불을 올렸다가 솥을 통째로 태워먹자 자식들의 걱정은 커졌다. 얼마 뒤 할머니는 부엌을 통째로 태웠다. 불이 안방으로 번질 뻔한 아찔한 사고였다. 자식들은 마을에서 가까운 식당을 찾아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 앞으로 하루 세끼 도시락을 배달시켰다. 6가지 찬에 따끈한 밥과 국이 포장된 정갈한 도시락을 보면서 자식들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분간은 안전하시겠지.'

병세는 점점 더 악화됐다. 할머니는 사람을 점점 못 알아봤다. 누가 가도 손자의 이름만 불렀다. 내면의 한도 터져 나왔다. 70년간의 결혼생활 동안 할아버지한테 푸념 한번 하지 않던 할머니는 미워 죽겠다는 듯 할아버지를 때렸다. 할머니의 한풀이에 90살을 넘긴 할아버지는 몸에 멍이 들도록 맞으며 평생의 죄를 갚고 있었다. 더이상은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정신이 온전한 할아버지는 요양원에 맡기고 할머니는 삼남매가 나눠서 돌보기로 했다. 큰아들네 두달, 작은아들네 두달, 셋째네 두달. 딸 둘과 외국 사는 막내아들은 순번에서 제외됐다.

우리 집이 첫번째였다. 아버지가 큰아들이다. 아버지는 소똥 냄새 나는 고향과 참기름 향을 풍기는 할머니를 사랑했지만, 치매 걸린 노인을 돌보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잠시 눈을 떼면 사고가 났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이 사라져 있고, 때론 무선전화기가 냉장고 안에 있었다. 책상 위에는 흙 묻은 아버지 신발이, 옷장에서는 반찬통이 튀어나왔다. 할머니는 입만 열면 '집에 가서 니 아버지 밥해줘야지'라고 소릴 지르며 신발을 신었다. 서울의 아들집은 할머니에겐 그저 남의 집이었다.

식사도 문제였다. 평소에는 반찬이 없어도 그럭저럭 버티던 아빠가 예민해졌다.

"평생 처음으로 어머니를 모시는데 반찬이 이게 뭐야. 노인네가 이걸 어떻게 씹어!" 워킹맘인 엄마도 지지 않았다. "열두시까지 일하고 들어와서 밤새 만든 건데, 싫으면 당신이 직접 하든가." "그게 지금 말이야?" "말이 아닐 건 뭐야. 그렇게 어머니, 어머니 하더니 한달을 못 참고 나한테 짜증 내잖아."

가족들은 점점 지쳐갔다. 아빠는 운영하던 가게 문을 닫고 할머니 수발에 나섰지만 본래 간호에는 소질이 없는 사람이다. 할머니와 있으면서도 그저 주무시길 바랄 뿐 달리 간병인 구실을 하지 못했다.



사라진 할머니를 찾고 나서
우리는 주저앉아 울었다
부모를 고작 두 달 모시고
피폐해진 게 부끄러웠다

고집불통 할매는 요양원에서
생기도 사라지고 얌전해졌다
그래도 우리는 할 말이 없었다
여기서 쫓겨나면 갈 데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사라졌다. 덥다고 문을 열어둔 게 화근이었다. 집에 돌아오자 사색이 된 아빠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20층도 넘는 아파트에서 노인이 어떻게 내려갔을까' '엘리베이터도 못 타고 길도 모르고 자식도 못 알아보는 양반이 어딜 갔나' '못 찾으면 어떡하지…'. 안 좋은 생각이 꼬리를 물자 우리는 모두 정신줄을 놓아 버렸다. 경찰에 신고를 하고 아파트와 집 주변을 나눠 샅샅이 뒤졌다.

그렇게 네 식구가 소리를 지르며 찾은 지 한시간 만에 할머니를 아파트 2층 계단에서 발견했다. 아빠는 할머니를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가긴 어딜 간다고 나갔어. 자식도 못 알아보는 양반이 왜 자꾸 간다고…." 아빠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었다. 엄마도, 나도 울었다. 우리는 그저 복도에 주저앉았다. 평생 길러준 부모를 고작 두달 모시고서 피폐해진 것이 부끄러워서다. 할머니는 그 와중에도 '집에 갈라고'를 연발했다. 밤 기온이 30도까지 올라갔던 그날 밤 우리는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창문까지 닫고 누웠다. 치매 앞에서 네 식구는 무력해졌다.

그렇게 생채기를 남기고 난 뒤에야 지방에 있는 한 치매노인 요양원을 구할 수 있었다. 허름한 요양원에 있던 할아버지까지 모시고 왔다. 요양원비에 기저귀, 간식비 등을 포함해 한달에 한분당 150만원이 들었다. 이 역시 6남매가 나눠 내기로 했다. 돈으로 해결할 수만 있다면 감사해야 했다.

요양원에 들어가면서 할머니는 허리까지 길었던 머리를 짧게 잘랐다. 늘 은비녀로 곱게 정돈한 머리의 할머니는 사내아이처럼 짧은 머리가 됐다. 그런 머리가 감기기 쉽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찾아간 할머니는 유난히 조용했다. 목욕은 일주일에 두번, 밥도 잘 나오고 간식도 드신단다. 한데 생기가 사라졌다. 꼭 호되게 혼난 어린이집의 아이 같았다. '집에 가서 니 아버지 밥해야제'를 연발하던 고집불통 할매는 없고 얌전한 요양원 노인이 앉아 있었다. 밤에 잠을 안 주무셔서 약을 좀 먹였다는 얘기도 있고, 집에 가겠다고 하도 고집을 부려서 안정제를 투여했다는 말도 들려왔다.

그래도 우린 할 말이 없었다. 고작 두달 만에 두손 두발 다 들어버린 것들이 자식이라고 와서 '왜 어머니를 함부로 대하느냐'고 말하는 건 자기기만이었다. 여기서 쫓겨나면 갈 데가 없기도 했다. 엄마와 아빠는 그저 요양원 보호사 선생에게 용돈을 쥐여주며 "잘 좀 부탁드린다"고 얘기했다. 나는 "할머니 미안해"만 반복했다.

쓸쓸하게 돌아섰다. 자주 오겠다고 말했지만 요양원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저마다 지고 있던 삶의 짐을 다시 떠올렸다. 할머니에게 느꼈던 미안함은 내일 출근, 모레의 실적 마감, 다음주에 있을 시험에 대한 걱정으로 곧 사라졌다. 잠시나마 효자이고 싶었던 우린 그렇게 또 불효자로 살아가고 있다.

할머니 뒤에서 우는 불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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