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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의 본질 1부 – 8장. 진화와 인지거리
 
 
■ 진화의 비밀
 
인지거리에 따라 인식체계가 달라지고,
그로 인해 대상을 이해하는 방식과 생성 논리가 달라진다고 했다.
그럼 왜 이렇게 인지거리가 달라졌을까?
 
세계관은 지속적인 반복 활동을 통해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그러니 진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인류가 진화하면서 군집생활을 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인지거리가 긴 개방적인 개체와 짧은 폐쇄적인 개체가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군집생활을 하다보면 다양한 개체들이 섞이기 마련이라 생각하겠지만,
이는 생존과 관련된 문제다.
 
 
 
일정한 개체가 모여 군집생활을 하던 중, 전혀 다른 개체를 만났다고 생각해보자.
이때 한쪽은 이들을 수용하자는 개방주의를 택하고, 다른 한쪽은 수용하지 말자는 폐쇄주의를 택한다.
 
개방주의를 택하면, 유전자가 다양해지므로 질병에 대한 저항이 강해지고,
다양한 환경에 더 잘 적응할 유전자가 나타날 수도 있다.
폐쇄주의를 택하면, 새로운 개체가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병균으로부터 회피할 수 있고,
현재도 먹고 살기 힘든데, 저들까지 먹여 살리는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된다.
사실 어느 쪽이 생존에 더 유리할지는 알 수 없다. (수용, 개방의 문제)
그래서 두 성향 모두 발전(진화)한 것이다.
 
 
또, 사냥을 해서 먹고 사는데, 동물들이 더 이상 이곳을 지나지 않는다.
이때 개방적인 개체들은, 생활지역을 다른 곳으로 옮기자고 주장 할 테고,
폐쇄적인 개체들은, ‘아니다. 기다려보면 더 많은 동물들이 올지 모른다.’ 고 주장 할 것이다.
역시 어느 쪽이 생존에 유리할지는 알 수 없다. (이동, 개척의 문제)
이동을 해야 살아남는 경우도 있고, 이동했다가 죽을 수도 있다.
또 자리를 지켜야 살아남을 수도 있고, 굶어 죽을 수도 있다.
이런 과정들을 반복하다 보니, 정착하려는 개체와 개척하려는 개체가 생기고,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유럽, 아시아, 남미까지 뻗어나간 것이다.
 
 
 
인류의 이동경로. 출처: http://www.seehint.com/hint.asp?no=12660
 
 
 
즉, 진화과정에서 발생한 생존을 위한 노력 덕분에, 인지거리가 다른 개체들이 생겨났고,
이것이 현재의 좌파(진보)와 우파(보수)의 세계관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계관을 가지고 있더라도, 중세까지는 모두 군주의 명령에 따라야 했기에 성향을 드러낼 수 없었다.
민주주의가 정착하자(이 역시 좌파의 노력)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좌파와 우파로 나눠 대립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우파라는 존재 자체는 인정하는 게 좋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존재들을 인정할 수 있어야,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대화를 하든 싸우던 간에.....
이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무식하다, 이기적이다, 멍청하다, 병*이다.'라고
욕하고 무시한다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제대로 이해한 후에 머리를 맞대면,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인지거리 바깥쪽이란?
 
자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그럼 인지거리 바깥쪽이라는 개념은 어떤 느낌일까?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은 대체로 인지거리가 긴 쪽일 것이다. (아님 말고 ^^)
 
동남아 어딘가 태풍이 불어 큰 피해가 생겼다고 해보자.
뉴스에 어디에 얼마만큼 피해가 있고, 사상자가 몇인지 자세히 나온다.
이때 느낌이 어떤가?
뉴스를 보는 동안은 걱정되겠지만 뉴스가 끝나면 어떨까?
아마 더 이상 고려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 피해는 그 나라의 문제이고, 나와는 상관없기 때문이다.
피해지역과 직접적인 교류가 있거나 무역이라도 하면 다르겠지만,
대부분 ‘그런 일이 있구나.’ 정도만 생각하고 넘길 것이다.
 
 
인지거리가 짧은 사람은,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사회도 저렇게 바라본다.
사회문제인 청년 실업, 자살, 정권의 비리, 민간인 사찰, 국정원 선거개입,
국정화 교과서, 위안부 문제 등등은 모두 나와 상관없는 문제라고 느낀다.
그러니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셈이다. (나만 잘하면 되는데 뭐 하러 신경 쓰랴)
 
심할 경우 바로 옆에 서 있는 사람(동료나 친구)조차 그렇게 인식한다.
인지거리가 짧을수록 직접 관련된 가족, 수입, 집값(부동산), 아이교육 문제 등에만 신경 쓴다.
그 외는 ‘내가 왜 신경 써야해?’라거나 ‘나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또 인지거리가 짧을수록, 나와 거리가 먼 것들을 추상적이라고 느낀다.
구체적 실체가 보이지 않으니, 중요성을 더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아무리 민간인 사찰이나 국정원 해킹 사건을 중요하게 다룬다 해도,
인지거리가 짧은 사람들은, ‘왜 저런 걸로 시끄럽게 굴지?’라고 생각 할 뿐이다.
(동기화된 추론의 영향)
 
시위대를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잘못했더라도 대통령보다, 길 막고 시위하는 시위대가 더 싫다.”라고 한다.
정치는 멀리 있는 추상적 개념이니 와 닿지 않지만,
길 막히고 시끄러운 건 나한테 직접적으로 와 닿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하는 놈을 나쁜 놈이라고 욕하지만,
장애인 복지정책을 없애는(예산을 삭감하는) 당을 지지한다.
주차는 바로 내 앞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화를 내지만,
장애인 정책은 저 위에서 하는 일이니 나와는 무관하다고(추상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렇듯 인지거리 안쪽과 바깥쪽에 대한 인식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길거리 휴지를 주우며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국민을 더 못살게 만드는 당을 지지하는 현상이 생긴다.
물론 본인은 '그게 당연한거 아냐? 뭐가 문제지?' 라고 인식한다.
이때 더 길고 깊게 생각하라면, 자신을 괴롭힌다고 느낀다.
(저 멀리 있는 나쁜일 보다, 지금 당장 날 괴롭히는 네가 더 싫어....라는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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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선거에서의 구호
 
민주진보진영이 선거에서 아무리 민주화나 경제민주화, 정권비리(심판론), 불법선거 등의 사회문제를 이야기해봐야
인지거리가 짧은 사람들에게는 와 닿지 않는다.
이들은 '구체적인 뭔가를 해주께!’ 라는 것에 반응한다.
 
새누리당 선거 현수막을 한 번 들여다보자.
굉장히 구체적인 액션을 적어 놨다.
비록 모두 거짓말일지라도, 저렇게 구체적으로 적어놔야 유권자가 반응한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다. (자신들의 인지거리도 짧기에....)
 
그러니 선거에 임할 때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 시켜서 구호를 만들어야 한다.
 
박근혜 대선당시 공약과 현수막 - 아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미지출처: 뉴시스, 구글
 
 
간혹 보수진영에서는 내용 없는 구호만 외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미래한국” “꿈이 이루어지는” “강한 대한민국” 등등,
이 경우는 구체적인 플랜이 없을 경우에 쓰는 멘트인데,
최고의 자리에 가 있는 사람이 쓸 경우 효과가 있다.
 
여기에는 우파가 가진 고귀한 존재라는 개념이 작용하는데, (조너선 하이트의 6가지 도덕성 중 하나)
최고의 자리에 있는 만큼, 자동으로 권위를 부여해서 해석한다.
그럼 “아 큰 그림을 그리시는가보구나” 하고 스스로 납득해버린다.
권위주의와 맞물려 작용하는 동기화된 추론이다.
물론 지지하지 않는 쪽에는, 귄위를 부여하지 않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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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익 추구 (벌어들이는 것에 대한 집착)
 
이번엔 좀 어려울 수 있다.
인지거리가 짧으면, 인지거리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벌어들인다.’는 개념만 가진다.
반대로 ‘내가 지불한다.’는 개념은 약하거나(때론 없거나) 혐오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동서양의 세계관’이나 ‘남녀의 세계관’처럼 일종의 방향성이다.
이 역시 인지거리가 짧을수록 더 심해진다.
 
 
 
 
인지거리가 길면, 재화나 이익을 인지거리 내에서의 이동으로 인식한다. (앞서 설명한 세금처럼)
그러니 때론 사회를 위해 내 이익을 감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불이익도 수용)
 
반대로 인지거리가 짧으면, 인지거리 내에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무조건 밖에서 벌어 와야 한다.
그렇다 보니 밖에서 내게로 온다는 개념은 당연하게 작동 하지만,
나에게서 밖으로 나가는 개념은 약하거나 안가지고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욕심이 더 많아진다.
 
 
이 개념도 모든 사고의 밑바탕으로 깔려 작용한다.
예를 들어, 환율(달러 값)이 오르면,
수출이 잘되어 더 많이 벌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버는 쪽으로만 인식이 작동)
이때 수입하는 원자재 값이 오른다는 인식은 없거나 약하다.
팔아서 버는 것만 생각하지, 수입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개념은 없는 것이다.
 
또 언론에서 부동산이 오른다고 나오면, 비싼 값에 팔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조차 비싼 값에 사야한다는 생각은 떠올리지 않는다. (생각이 안 난다.)
마찬가지로 부동산이 오르면 더 비싼 세를 받을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한다.
역시 자신이 세입자로 더 비싼 세를 지불한다는 인식은 안가지고 있다.
 
즉, 모두 벌어들이는 쪽에 방점을 찍고, 사고의 방향을 전개하는 것이다. (동기화된 추론)
 
 
 
인식이 이렇게 작동하기에,
부동산 가격이 올라야 경기가 좋아진다는 뉴스가 나오면, ‘그래 맞아!’ 하며 맞장구를 친다. (우리가 볼땐 미친 생각일지라도)
이때 지불해야 하는 입장을 상기시켜주면, ‘넌 왜 그렇게 부정적이냐?’ 라고 핀잔한다.
부동산 임대료 때문에 상가들이 나가 떨어져 상권이 망하는 것을 보여줘도
‘그건 저들이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야.’ 라고 외면한다.
 
그리고는 막상 자신이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할 때가 되면, 투덜대거나 화를 낸다.
나로부터 나가는 돈에는 불만인 것이다. 물론 그것도 잠시다.
인지거리가 짧을수록 현실순응성이 강하기 때문에 곧 잠잠해지고,   (이부분은 차후 다시 설명)
벌어들이는 쪽으로만 인식이 작동하기에, 더 많이 벌 궁리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을 한국우파 기득권이 잘 이용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무현 정권의 종부세다.
우파 정치권과 기득권 및 언론들은 이를 ‘세금 폭탄’이라고 강조했다.
폭탄은 그 자체로도 아주 위험한 물건이다.
이걸 내가 맞는다는 개념으로 사용했고, 피해를 본다는 인식을 갖게 하기엔 더없이 좋은 프레임이다.
종부세와 전혀 관계가 없는 가난한 우파들조차, 자신의 세금이 뜯기는 양 화를 낸 건,
이처럼 ‘지불해야 하는 입장’으로 프레임을 짜서 강조했기 때문이다.
 
다른 세금도 마찬가지다.
우파정권일 때 세금을 올리면,
수구 언론들은 ‘재정 확보’, ‘재정 건전성 확립’, ‘재정 정상화’등, 벌어들이는 입장을 강조한다.
그러나 좌파정권을 일때는, ‘세금 폭탄’ 이라며 ‘내가 두드려 맞는’ 입장을 강조한다.
인지거리가 짧을수록 버는 건 좋지만 지불 하는 건 혐오하므로, 이런 프레임은 잘 먹혀든다.
 
벌어들인다고 포지셔닝(Positioning)을 하면 아무 말 안하지만,
지불해야 한다고 포지셔닝을 하면 극도로 분노하게 되는 원리를 잘 이용한 것이다.
 
 
인지거리가 짧은 우파에겐 본능 같은 개념이라,  이 원리를 잘 이해하지만,
인지거리가 긴 좌파는 자신에겐 해당사항 없는 세금(종부세)에 왜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또 ‘재정확보’나 ‘세금폭탄’이나 어차피 인지거리 내에서의 이동이므로 같은 의미라고 인식한다.
그런데 전자는 잘한다고 칭찬하고 후자에겐 화를 내니,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인식체계가 이렇다 보니, 가난한 우파들은 자신이 당하는 입장에서도, 우파 기득권의 논리를 지지한다. (편을 든다.)
부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더라도 지지하는 것이다. (가난한 자가 부자 편을 드는 꼴)
이걸 보고 ‘언젠가 자신도 부자가 될거라고 착각하고 지지한다.’라고 분석하기도 하는데,
이건 착각이나 무지가 아닌 본능이다.
그게 맞다고 느끼니 따라가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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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세금에 관한 언론 기사들
 
 
 
 
 
이들은 박근혜 정권이 세금을 올릴 때, 세금폭탄이라 쓰지 않았다.
진보언론만 ‘서민세금폭탄’이라 했지만, 사실 진보지지자들은 세금폭탄이라는 용어에
보수만큼 발끈하지 않는다. 인식체계의 차이 때문이다.
 
미국 우파는 '세금구제'라는 말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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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자는 세금을 내는 것이 고통이라는 이미 확립된 프레임에 호소하는 데 '세금 구제'라는 짧은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출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 조지 레이코프.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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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폭탄, 미국에서는 구제(구조)로 쓰는 것도 세계관의 차이가 반영되어 있다.
한국은 도착점에 있기에 폭탄이 터지는 지점에 서 있다. 또, 오는 걸 받기에 수동적이다.
미국은 출발점에 있기에 구조하러 가겠다는 능동적 의미를 담고 있다. (1-3:보이지 않는 힘1 참조)  
 
 
 
 
 
<역사 학자 전우용 트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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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벌어들인다.’는 이미지는 복지에도 작용한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공짜 밥을 먹는 노인들과,
지하철을 공짜로 이용하는 노인들조차, 복지는 나라를 망하게 한다고 욕한다.
이는 인식의 방향이 안쪽으로만 강하게 작용하므로,내가 받을 때는 당연한 것이지만(내 이익은 당연시),
인지거리 바깥에게 주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심지어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러니 내가 먹는 공짜 밥이나 지하철도 복지 덕분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는, 논리적 모순이 발생한다.
이 역시 단순한 무지가 아닌, 사고의 틀이 그렇게 밖에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1. 내가 받는 건 당연시하는 무의식의 작용으로
2. 동기화된 추론은 그 이유를 만들어 내고,
3. 그 결과 '우리가 이 나라를 일으켜 세웠다.'가 나온다.
4. 그럼 다시 이걸 이유로 '나는 누려도 된다.'는 자기 합리화가 완성되고,
5. 저들(인지거리 바깥)은 안 된다는 논리가 정립된다.
(참고로 나이가 들수록 인지거리가 조금씩 짧아지는데, 이것도 차후 다시 설명할 것이다.)
그들에겐 이게 모순이 아니다. 그냥 당연한 것이다.
 
 
 
 
 
 
■ 인지거리에 따른 인권의식과 직업의식
 
혹시 우파 인권운동가나 인권변호사를 본적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가끔 인권운동가 출신 정치인을 진짜 보수라고 정의하기도 하는데, (노무현, 문재인등)
이들이 사회적 보수가 될지는 몰라도 우파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우파는 인지거리 밖은 신경 쓰지 않는데다,
사회를 계급과 약육강식의 세계로 보기에 인권운동을 할리가 없다.
그런데도 한국우파가, 북한 인권에 신경 쓰는 건 신기한 현상이다.
물론 ‘진정으로’ 북한 인권을 생각한 주장은 아닐 것이다.
 
기본적으로 인권 침해가 가장 심한 곳은 군대다.
정말 인권을 생각한다면 군대 운용을 줄이거나 반대해야 하고, 그러려면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우파는 북한과의 대립을 조장하면서, 북한 인권 운운하고 있다.
그 저의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북한 인권을 내세우는 건 단순한 명분 쌓기이고,
동시에 ‘니들이 그렇게 인지거리 바깥쪽에 신경 쓴다면서, 북한은 왜 신경 안 쓰냐?, 북한이나 챙겨라!’ 라는
한국좌파에 대한 빈정거림이다.
자신들의 악행(인권침해)을 따지고 드니 ‘북한이나 신경 써라.’며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그럼 우파 경제학자는?
많다. 좌파 경제학자보다 훨씬 많다.
기본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만큼(벌어들인다는 개념이 강하게 작용하니),
경제나 투자분야에는 많이 포진하고 있다.
본능적인 끌림이라고 봐도 된다.
그러다 보니, 경기가 불황이면 더 우파적 처방을 내 놓는다.
대기업의 세금을 감면하고, 국가에서 더 지원해 줘야 하며,
노동자의 월급을 줄이고, 해고를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처방 때문에 빈부격차가 더 심해지고, 경기 불황이 오는데도,
그들은 이러한 처방만이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경제 논리조차 자신들의 인지체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지효과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혐오한다.)
 
 
 
이런 반응이 조지 레이코프가 말하는 ‘프레임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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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발표한 프레임 이론(Frame theory)에서 프레임이란?
현대인들이 정치ㆍ사회적 의제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본질과 의미, 사건과 사실 사이의 관계를 정하는 직관적 틀을 뜻한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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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프레임을 가지고 있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가
그 프레임에 맞으면 수용하고, 아니면 버려버린다는 이론이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우파는 프레임이라는 개념이 없다.
그냥 본능에 맞는 걸 찾아 이용할 뿐이다. 그게 좌파의 눈에 프레임처럼 보이는 것이다.)
 
우파 경제학자는 아무리 많은 정보와 데이터를 쌓아도,
자신이 가진 인식체계(프레임)에 맞는 이론이나 해법만 내놓는다. (그걸 벗어나지 못한다.)
 
 
 
기본적으로 우파가 가진 직업의식을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여기 인지거리가 짧은 의사가 한명 있다. (단순한 사례다. 의사에 대한 편견은 없다)
이 사람은 자신의 의학지식이 사회전체가 발전하면서 생긴 것이고, 사회의 혜택으로 얻은 게 아닌,
내가 돈을 주고 그 지식을 배웠고 내 노력으로 익혔으니, 사회와는 무관하다고 인식한다.
그러므로
“환자들을 치료해주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것도 사회와는 무관하다.
내가 실력이 있으면 환자들이 더 찾아 올 것이고, 그만큼 돈을 더 버는 건 당연하다“ 고 생각한다.
사고의 작용거리가 짧으니, 이렇게 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물론 이런 인식이 더 좋은 의료기술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환자를 돈으로만 보는 병폐도 더 심해진다.
 
반대로 인지거리가 긴 의사는 오지나 의료사각지대에 봉사활동을 한다.
개인의 이익보다, 세상에서 얻은 지식. 세상을 향해 써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다.
이 양극단의 중간지점에 다양한 관점도 존재한다. (인지거리의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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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거리가 짧은 사례:
기사: 만6천원이었던 약값을 하루만에 85만 원으로 올린 '제약회사 CEO’
 
마틴은 에이즈약 '다라프림'의 특허권을 인수하자마자 가격을 13.5달러(약 1만6천 원)에서
750달러(약 85만5천 원)로 무려 50배 이상 인상했다.
 
=> 자신의 인지거리 바깥쪽의 사람들이 죽든 말든 '난 돈만 벌면 그만이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인지거리가 긴 사례: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성산 장기려 박사
환자에게 몸을 보해야 한다고 닭 두 마리 값을 도로 내주라고 한 일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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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wo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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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의 본질 1부 – 7장. 세금과 경제에 대한 인식
 
 
■ 본질과 현상의 이해
 
잠시 다른 이야기를 좀 해보자.
우리 눈에 드러나는 많은 일들은 대부분 현상에 속한다.
본질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세계관도 마찬가지다.)
 
 
본질과 현상의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음식으로 비유해 보자.
눈앞에 짜장면, 짬뽕, 잡채밥, 볶음밥, 마파두부밥, 탕수육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중국집 음식들이다.
음식 메뉴를 현상으로 보고, 공통된 특성을 뽑아내면 중국집이 나온다.
이러면  중국집을 본질로 볼 수 있다.
 
 
이때
- 중국집은 정말 본질일까?
- 중국집도 현상이 아닐까?
- 중국집과 같은 현상은 더 없을까?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 결과 다양한 식당들이 더 나온다.
 
 
그럼 다양한 식당들의 공통된 특징은 무엇일까?
‘점심’이라고 해보자.
다시 점심을 현상으로 놓으면, 아침과 저녁 간식 등의 다른 현상들이 나온다.
 
 
아침, 점심, 저녁의 공통된 특징은 '끼니'다.
끼니와 같은 층에 있는 게, 정해진 시간 외의 ‘참’이 있다. 간식, 야식이 여기에 속한다.
 
다시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배고픔(식욕)이다.
'식욕' 아래에는 가장 원초적인 '생존'이 있다.
 
 
 
 
자 그렇다면 질문!
“간식으로 짜장면을 먹으면 안 되는가?”
당연히 된다. 왜냐면 모두
‘식욕’이라는 본질 위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본질을 이해하면, 그 위에 나타나는 현상은 대부분 이해가 되고 수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음식의 본질을 중국집까지만 인식하는 사람은, 분식이나 새참을 이해하지 못한다.
심지어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틀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면, 상대가 틀렸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세계관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면, 잘못된 것이라 인식한다.
이런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려면, 더 깊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위에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들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나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 내보이는 현상을 수용할지 말지는 그 다음 (개인의)선택이다.)
 
 
 
식욕의 경우, 강한 욕구이자 실체 또한 분명하다.
그러나 세계관은 우리의 사고패턴에 녹아있기 때문에 실체를 잡기 힘들다.
 
식욕을 논리 단위로 정리해보면,
생존본능에서 나온 1차 논리가 식욕이고, 다시 식욕에서 나온 2차 논리가 끼니나 참이다.
3차 논리가 아침, 점심, 저녁, 4차 논리는 식당, 그 위에 다양한 메뉴는 5차 논리다.
 
이걸 좌파와 우파의 세계관에 적용할 경우,
인지거리에서 나온 1차 논리가 ‘평등과 계급’, ‘개방과 폐쇄’, ‘공동체와 개인’이다.
이 1차 논리를 바탕으로, 다시 2차 3차 4차 논리들이 형성된다.
예를 들어 ‘평등과 공동체’가 합치면 ‘복지’가 나올 수 있고,
‘계급과 개인’이 합치면 비복지와 약육강식의 논리가 나올 수 있다.
각각의 논리는 독립적으로 작용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중복, 결합되어 복합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니 세계관의 결과 값을 ‘A는 B다.’라는 단순한 명제로 이해해선 안 된다.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질로 갈수록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그럼 A에서 B, C, D, E 가 나올 수도 있고,
B, C, E 가 다시 하나의 F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 사회 구조적 문제다.(좌파) vs 너만 잘하면 그만이다.(우파)
 
인지거리가 사회전체까지 닿는 좌파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의 원인을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찾는다.
이쪽에서 생기는 문제가, 저쪽에도 영향을 주고,
한쪽에서 시작한 일 때문에, 다른 쪽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인식이다.
그래서 사회적 문제가 나오면, 구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지거리가 자기 주변까지만 닿는 우파는, 인지거리 바깥쪽은 신경 쓰지 않는다.
사회적 문제가 분명해도
‘사회가 어떻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 너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냐?’ 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일자리가 부족해 청년 실업률이 올라가도, 본인만 잘하면 그만이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 부동산이 올라도, 너만 잘 벌면 그만.
- 등록금이 올라도, 너만 공부 잘하면 그만.
- 기름 값이 올라도, 너만 차 안 끌고 다니면 그만.
- 철도 민영화를 한다 해도, 너만 기차 안타면 그만.
- 수도 요금이 올라도, 너만 아껴 쓰면 그만.
즉, 주변 환경이 어떻든 간에, 능력이 있거나, 해당 분야를 이용하지 않으면 그만이다는 식이다.
그래서 더 큰 문제가 생기는 나쁜 제도(노동개악)를 도입할 때조차,
‘니네는 왜 그렇게 부정적이냐?’라며 옹호한다.
인식이 거기까지 닿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전체적 영향을 보지 못한다.)
 
 
 
이렇듯 사회문제가 자신의 고려대상이 아니므로,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언급하면,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세상 탓만 한다.’고 욕한다.
 
여기서 무임승차 논리가 나온다. (3차나 4차 논리)
우파에겐 고려 대상이 아닌 것(사회구조)을 지적하는 모양새이므로,
‘스스로 헤쳐 나갈 의지 없이 무임승차 하겠다는 것이냐?’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오오오오오오력은 해봤냐?’ 는 말로 개인 책임으로 떠넘긴다.
 
 
 
 
■ 세금에 대한 인식
 
좌파는 세금이 사회전체에서 걷는 비용이므로, 사회전체에 유용하게 써야 한다고 인식한다.
상대적으로 많이 버는 사람에게는 더 걷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덜 걷고, 더 투자해야 된다는 인식이다. (평등사상=복지국가)
돈의 흐름이 많은 쪽에서 적은 쪽으로 이동한다고 해도,
여전히 인지영역 내에서의 일이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우파는 세금 자체가 내 인지영역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세금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주머니에서 나간 돈은 더 이상 내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전체 돈’이라는 개념은 없다.
오로지 ‘내 돈인가? 아닌가?’의 인식만 있다.
 
 
 
(세금에 대한 인식을 위와 같이 설명하면, 우파를 나쁜 놈으로 묘사한다고 화내던데,
이는 무의식에서의(세계관) 인식을 말하는 것이다.
이 인식이 성장과정에서의 환경(학습)과 결합해 더 심해질 수도 있고 약화될 수도 있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
 
우파는 기본적으로 내게서 나간 돈은 신경 쓰지 않는다.
애초에 안내려고 노력한다. ‘작은 정부’나 ‘세금감면’도 이런 차원에서 나온 논리다.
국가운영에 드는 비용은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똑같이 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미 낸 돈은 먼저 '빼먹는 쪽이 임자'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잘 빼먹는 사람을 능력자라 추켜세운다.
(이명박의 4대강 사업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사회전체의 돈으로 인식하는 좌파는 국가부채가 늘어나는 것을 싫어한다.
그게 나와 상관없다고 인식하는 우파는 국가부채가 늘든 말든
더 집행해서 (자기가) 돈을 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우파정권일 때 부채가 더 잘 늘어난다.
미국이나 일본의 국가 부채가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표적 우파성향국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IMF환란으로 탈탈 털린 국고를 DJ정권에서 채워 넣었고,
노무현정권에서는 부채가 늘었지만, GDP도 함께 늘어 부담은 적었다.
이명박정권은 정부부채를 공공기관으로 넘기는 꼼수로, GDP대비 비율을 유지했지만,
실제로는 이전정권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부채를 만들었다.
박근혜정권은 이명박정권보다 더 늘리고 있다.
 
 
 
 
서울시도 마찬가지다.
이명박은 사상 최초로 서울시에 12조원이상의 적자를 냈고,
바톤을 이어받은 오세훈도 비슷한 수준의 적자를 냈다.
박원순시장이 그 부채를 갚고 있다.
(좌파쪽에서 부채를 줄이거나 갚아나가면,
우파는 '부채를 줄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소리를 해대기도 한다. - 자기들이 돈 벌 구멍이 줄어든다는 의미)
 
 
 
 
 
이쯤이면 또 다른 의문이 생길 것이다.
“자신의 주머니에서 나간 돈이라 신경 쓰지 않는다면, 왜 복지를 반대하지? 어차피 나간 돈이니 끝이잖아?“
이런 생각 안 드는가?
 
우파는 “내가 낸 세금을 왜 가난한 자에게 주느냐?” 라고 화를 낸다.
이건 3차나 4차 논리쯤 된다.
실제 세금이 어디에 쓰이던 신경 쓰지 않지만, 복지를 반대하는 이유는
1. 기본적으로 인지거리 바깥쪽에 돈을 준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
2. 성장을 핑계로 투자하면 내가 돈을 벌 수 있다. (4대강 등)
3. 가난한 자들이 돈이 없어야, 그들을 더 싸게 부릴 수 있다. (푼돈에도 일한다.)
4. 노동자들이 나태해진다. (우파의 인지체계에서 나오는 논리, 자신들은 그게 당연하다 생각한다.)
등이다.
 
모두 우파 기득권의 논리고, 이걸 우파 지지자들은 따라간다.
우파의 인식은 대부분 ‘이익’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건 모두 반대한다.  (다음장에서 다시 설명)
복지는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실제 복지가 경제를 일으키는 효과가 큰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인식체계는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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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국가채무추이
 
이미지 출처: e-나라지표
 
기사:“공공기관 영업익으로 이자 60%도 못 갚아”
 
기사: 수공 ‘MB 4대강 사업 빚’ 6조8천억원 국민 세금으로 갚는다
 
기사: 유종일 "MB 자원외교, 추산 손실액만 56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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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에 관한 인식
 
우파는 복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왜 그러는지 알려면 먼저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이해해야 한다.
경제란 돈이 도는 것이다. 인체에 비유하면 혈액순환이다.
돈이 돌면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경제성장이다.
이 돈을 돌리는 방법에 있어 좌파와 우파는 인식이 다르다.
 
평등을 추구하는 좌파는 복지효과가 경제를 살린다고 생각한다. (출발점을 아래로 본다)
계급을 추구하는 우파는 낙수효과가 경제를 살린다고 생각한다. (출발점을 위라고 본다)
 
 
 
 
 
 
 
 
 
하지만 우파의 주장인 낙수효과는 없다는 게 이미 많은 국가에서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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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기사 : IMF “부의 ‘낙수 효과’ 틀린 논리…내려가지 않는다”
 
IMF 소속 경제학자들은 150여 개국 사례를 분석한 결과,
상위 20% 계층의 소득이 1%포인트 증가하면 이후 5년의 성장이 연평균 0.08%포인트 감소
반면, 하위 20%의 소득이 1%포인트 늘어나면 같은 기간의 성장이 연평균 0.38%포인트 확대
IMF 보고서는 높은 수준의 소득불평등은 가난한 사람들이 보건과 교육비를 지출하는데
더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경제성장을 오히려 가로막는다고 설명했다.
"결론은 하위 계층의 소득을 늘리고, 중산층을 유지하는 것이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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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보고서는 복지가 경제성장을 이끈다는 걸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통계도 마찬가지다.
아래는 2015년 1월 KBS1에서 방영한 [명견만리]의 일부다.
 
우리나라 2000대 기업 매출액이
2000년에는 815조에서 2010년에 1711조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고용률은 2.8%만 증가했다.
 
 
기업이 성장해도 그 돈은 아래로 분배되지 않는다.
오히려 대기업 지원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허약한 경제구조를 만들고 있다.
 
 
 
이들의 멘트 일부를 텍스트로 옮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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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국내에서 벌어진 일들 잘 보셨습니까?
한국의 일자리 구조를 살펴보면,
대기업 중심의 피라미드 형태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대기업은 투자도 줄이고, 일자리도 줄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의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그동안 우리는 대기업이 잘되기를 응원하고 밀어줬지만,
이것이 오히려 대부분 일자리를 허약하게 만들고,
노동시장 전반에 위기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
-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
 
“진화론적으로 보더라도 혼자서 살아남는 개체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거든요.
단기적으로는 승자독식이 이득일 수 있습니다.
근데 장기적으로는 공생과 협력을 해야 더 큰 파이가 오거든요..
그걸 상리공생이라 표현하는데요.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공생이라는 뜻이죠.“
- 장대익 – 서울대학교 교수 -
 
출처: KBS1 명견만리 10부작.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1.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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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우파는 왜 계속 낙수효과를 주장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인식체계에는 그게 옳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파 기득권은, ‘내가 돈이 많으면, 투자를 더 하고 고용을 더 하니 분배가 된다.’고 인식한다.
그러니 좌파의 복지효과는 이해할 수가 없다.
 
 
 
 
가난한 우파도 자기가 돈이 있으면 같은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고귀한 존재(기득권자=높으신 양반)들이 그렇다고 하니 더 확신을 얻는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게 당연하므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는 (좌파)논리는 틀렸다고 인식하고, “에이 그건 아니지~”라고 반응한다.
 
아무리 자료를 보여줘도 ‘어쩌다 그렇게 된 거겠지’라고만 생각한다.
사고의 틀이 자신의 인식체계(및 그와 동기화된 추론)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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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의 본질 1부 – 6장. 좌파와 우파의 근원
 
 
앞서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기본적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제부터 설명할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기에 길게 설명한 것이다.
이제 본래 목적인 진보와 보수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이 글은 ‘생물학적인 세계관’을 기반으로 진보와 보수를 설명하므로,
최초의 명칭인 ‘좌파와 우파’라는 용어를 쓸 것이다.
그리고 생물학적 원리를 설명하지만, 사례는 한국 현실정치에서 들 예정이다.
그렇다고 한국정치가 생물학적 영향을 대변한다고 오해해선 안 된다.
한국현실정치는 ‘생물학적 영향의 한 사례’일 뿐이다.
환경이 다른 외국은 같은 상황에서 다른 사례를 보여줄 수도 있다.
자 그럼 시작해보자.
 
 
 
 
■ 좌파와 우파 세계관의 출발점
 
좌파와 우파의 세계관은 ‘인식하는 세상의 크기’에서 비롯된다.
좌파가 인지하는 세상은 크고, 우파가 인지하는 세상은 작다.
여기서 세상은 현시대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의 개념이 아닌,
원시조상들이 인식하던 ‘어디까지가 내가 살고 있는 곳(세상)인가?’의 개념이다.
다른 각도로 보면 '어디까지 고려해야 하나?'라는 물음이며,
이는 곧 ‘인식이 닿는 거리’라고 할 수 있다.
 
세계관에서 인식하는 세상이 크면 클수록 더 멀리까지 고려한다.
이 '인식하는 세상의 크기'는 타고나는 것이며,
내가 인식하는 세상 너머는, 나와 다른 세상이거나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세상으로 인식 한다.
 
 
 
이렇게 세계관에서 작용하는 인식의 거리를 “무의식적 인지거리”라 정의하자.
세상을 넓게 보는 좌파는 무의식적 인지거리가 길고,
세상을 좁게 보는 우파는 무의식적 인지거리가 짧다. (이후부터 ‘인지거리’로 표현)
이 인지거리의 길이가, 우리의 인식체계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간다.
 
 
인지거리가 긴 좌파는 무의식에서 고려하는 대상이 지정범위(세상) 전체까지 닿는다.
‘세계전체’를 세상으로 볼 경우, 세계를 모두 포함해서 인식하고,
‘국가(한국)’를 세상으로 볼 경우, 국가 전체를 인식한다.
 
 
 
 
인지거리가 짧은 우파는, 지정범위(세상) 내에서 자신이 필요한 방어적 거리까지만 고려한다.
‘세계전체’를 세상으로 볼 경우, 우리나라까지만 인식하고,
‘국가(한국)’를 세상으로 볼 경우, 자신이 사는 범위(지역, 직장)까지만 인식한다.
‘직장’이나 ‘친척’을 범위로 정하면, ‘우리 팀’,‘내 가족’까지만이다.
그 너머는 고려할 필요가 없고,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된다.
기준이 어떻든 ‘우리’라고 할 만한 범위까지만 인식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우리가 남이가’로 유명하다.)
 
이런 인식도 세계관의 작용이므로 스스로 자각 하지 못한다.
단지 그 영향만 받으며, 그걸 당연시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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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보수주의의 지역주의
보수주의자들은 지역주의에 더 가까운 특징을 가진다.
즉, 인류 전체보다는 자신이 속한 집단을 더 중요시한다. 이들의 경우에는 자유/압제 기반과
독재에 대한 증오를 이용해서 경제적 보수주의의 수많은 교조를 뒷받침해낸다.
그리하여(진보적 복지국가와 그것이 부과하는 높은 세금으로) 나를 짓밟지 말고, (억압적인 규제로) 내 사업을 짓밟지 말 것이며,
(유엔 및 주권에 해가 되는 국제조약을 만들어) 내 나라를 짓밟지 말라는 주장이 나온다.
따라서 미국 보수주의자에게는 신성한 가치가 평등이 아니라 자유이다.
보수주의자가 자유주의자와 정치적으로 한편이 되는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출처: [바른마음]-조너선 하이트. 웅진지식하우스. p.32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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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지거리별 존재 비율
 
세상이라는 표현이 ‘세계관적 의미’와 ‘사전적 의미’가 헷갈릴 수 있으니
‘사회’로 치환해서 생각해보자.
사회적 개념으로 이해하면, 좌파의 인지거리는 사회전체까지 닿고,
우파의 인지거리는 자신의 주변까지만 닿는다.
(인지거리가 긴 사람은 좌파가 되고, 짧은 사람은 우파가 되는 것이다.)
 
 
 
어느 사회나 인지거리가 긴 사람의 비율이 30%, 중간이 40%, 짧은 사람이 30%쯤 된다.
즉, 좌파가 30%, 중도가 40%, 우파가 30%쯤 된다는 뜻이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라는 전제하에서다.
비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지 못한다.
 
 
 
 
 
이는 생물학적(선천적) 비율이며, 환경이나 양육과정(학습)을 통해 조금씩 달라질 수는 있다.
참고로 [프레임 전쟁]의 작가 조지 레이코프는 좌파가 40%, 중도 20%, 우파가 40% 라 정의했다.
평소에는 30 : 40 : 30 정도의 비율을 유지하다가, 선거 때가 되면 40 : 20 : 40 의 비율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간의 20%를 끌고 오는 쪽이 이긴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평소 비율이 25(좌) : 40(중) : 35(우) 정도이고, 
선거 때가 되면 35 : 20 : 45 정도로 이동한다.
현시점(2015.9.18)에는 25(새정치+정의당) : 35 : 40 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중도라는 표현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도 있을 텐데
조지 레이코프의 실험에 의하면 중도는 ‘이중개념주의자’다.
좌파와 우파의 논리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중도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할 예정이니, 일단 그런 사람을 중도라고 칭하고,
지금은 좌파와 우파에 관한 내용을 먼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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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한국의 지지성향 조사
4월 총선, 12월에 대선이 치러졌던 2012년은
무당층(지지하는 당이 없는 사람들 = 중도)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사례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2012년 1월 여론조사에서 무당층은 41%였다가
총선이 치러졌던 4월에는 25%로 줄어들었다.
총선 이후 무당층은 다시 늘어나 7월 41%, 10월 36%를 유지하다
대선 시기였던 12월에 다시 28%로 줄어들었다.
이 조사에 의하면 무당층은 평상시에는 40% 정도 존재하다가,
선거가 다가오면 25% 내외로 감소한다.
그 차이인 15%는 여당과 야당으로 흡수될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또한 대선보다 총선 시기에 무당층이 더 감소한 것은
상대적으로 대선은 인물 비중이 높고, 총선은 정당의 비중이 높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야당, 진보 정당, 제3세력은 무당층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는 과거의 ‘행동하는 무당층’에 대한 추억 때문이다.
확실하게 2010년 이전에는 무당층이 야당 성향으로 행동했다.
그런데 2010년 지방선거 이후에 치러 진 주요선거에서 무당층은 특정 경향성을 띄지 않고 있다.
여당과 야당으로 골고루 분산되거나, 아예 여당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추억은 추억을 뿐이다. 진보가 무당층을 우군으로 생각한다면 또 한 번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출처: [왜 낡은 보수가 승리하는가] – 김상진, 엄경영. 라의눈 출판. p.54~55
(참고로 저자는, 앞으로 무당층은 보수쪽으로 기울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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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지거리의 작용 - 이기주의자 vs 위선자
 
일반적으로 좌파는 우파를 ‘이기주의자’라고 욕하고,
우파는 좌파를 ‘위선자’라고 욕한다.
왜 그럴까?
 
인지거리가 사회전체까지 닿는 좌파는,
뭐든 사회전체를 고려해서 생각하는 게 당연한데, (당연함의 작용)
그러지 않고 ‘자기’ 혹은 ‘소속 집단’만 생각하는 우파가 이기적이라 느낀다.
 
반대로 인지거리가 ‘나와 내 주변’까지만 닿는 우파는,
나와 내 주변까지만 고려하는 게 당연한데, (역시 당연함의 작용)
‘그 너머’를 왜 신경 써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 쟤들 왜 멀리까지 신경 써야 한다고 주장하지? 이상한데?
아하~! 자기들이 패권을 장악하려고 그런 소리 하는구나! 짜식들 졸라 위선자네...‘ 라고 느낀다.
 
우파의 눈에는 좌파가 옳음을 이야기 하거나, 인권을 이야기 하는 게,
옳은 척, 바른 척, 인권을 위하는 척 하면서 주도권을 장악하고, 지배세력이 되기 위한 쇼로 보인다.
(본인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파의 인식체계로는 그렇게 밖에 해석이 안 된다.
아무리 아니라고 설명해도, 자신이 가진 당연함을 벗어난 해석을 가질 수는 없다.
(남자가 여자의 말을 해석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간단히 예로,
기근으로 이웃동네 가난한 사람들이 더 힘들어 한다.
이때 좌파가 ‘우리가 그들을 도와주자.’라고 한다면,
우파는 ‘왜 우리가 그들을 도와줘야 하지? 우리 먹을 것도 부족한데?’라고 한다.
좌파의 인지거리에는 그들이 우리와 함께 사는 사람으로 인식되는데 비해,
우파에겐 인지거리 안에 들어오지 않으므로,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셈이다.
그런데도 도와주자는 건, 인기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으로 밖에 해석이 안 된다.
 
이처럼 좌파가 옳은 일을 해도 좋지 않게 보는 건, 모두 위선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런 시선은 오른쪽으로 갈수록 더 심해진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인지거리가 짧기 때문이다.
(그래서 극우로 갈수록 좌파에 대한 비난이 더 심해진다. 물론 반대도 마찬가지다.)
 
 
 
인지거리가 짧으면, 무의식에서부터 도와줘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그 느낌과 동기화된 추론은 ‘인기영합이다. 게으르고 무능한 놈들이다.’라는 명분(논리)을 만들어 낸다.
즉, ‘인기영합’과 ‘게으름’ 때문에 도와주기 싫은 게 아닌,
도와주기 싫으니 만들어 낸 이유가 ‘인기영합’과 ‘게으름’, '무임승차' 등인 것이다.
(동기화된 추론은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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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1: 민주화 운동에 대한 인식
 
한국 우파는 민주화운동조차 좌파가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이용한 것이지,
인권을 위한 활동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시민 자체적인 저항운동이라고 보기에는
아무리 그들의 논리가 좌파 패권주의로 작용한다 해도 이해되지 않는 게 많다.
(우파는 계급지향이므로, 권력자에게 저항하는 것 자체가 불경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파 기득권들은, 좌파의 활동을 북한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고 가져다 붙인다.
그럼 모든 게 명확해진다.
단순한 저항이 아닌, 북한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들의 공작이라면,
우파의 인지체계와 맞아 떨어져, ‘옳거니~’ 하고 이해되는 것이다.
그럼 그들의 믿음은 더 확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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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2: 포퓰리즘에 대한 인식
포퓰리즘이란, 한마디로 인기를 위해 대중이 원하는 것을 막 날리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키지 못할 공약의 남발이다.
한국우파가 포퓰리즘을 더 남발하지만 자신들은 아니라고 인식하고,
한국좌파의 주장과 행동은 무조건 포퓰리즘이라고 이해하는 것도, 짧은 인지거리에서 나오는 인식체계 때문이다.
보수의 인식은 “니네는 원래 포퓰리즘만 주장하는 놈들 아니냐.”라는 것이다.
실제 모든 정책이나 행위는 그 반대에 가깝지만, 자신들은 그렇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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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등을 추구하는 공동체주의 vs 계급을 추구하는 개인주의
 
인지거리가 사회전체까지 닿는 좌파는
사회구성원 전체가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인지거리가 나와 내 주변까지만 닿는 우파는,
우리만 잘 살면 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 너머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런 인식은 내가 그들(인지거리 바깥)보다, 더 고귀하다(소중하다)는 느낌을 만든다. (동기화된 추론)
 
그들은 어떻게 되든 말든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므로, 하찮게 대해도 된다.
이렇게 해서, 하찮은 존재와 고귀한 존재가 나눠진다.
계급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인지거리 바깥의 재물과 노동력을 착취하는데 있어, 아무런 거리낌을 느끼지 않는다.
그냥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노예제가 있었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웃 나라를 침범해 마음껏 죽이고, 살아남은 자를 포로로 잡아와 노예로 삼았다.
이게 우파가 주장하는 약육강식의 사회다. (우파가 힘을 추구하는 이유 중 하나)
 
 
 
(오늘날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모든 인간은 고귀하다.’는 민주주의가 정착된 이후의 명제다.
그 이전까지는 계급사회가 당연했다. 프랑스혁명을 기점으로 우파 지배논리에서 좌파 지배논리로 이동한 것이다.
즉, 민주주의 자체가 좌파의 혁명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인지거리가 짧을수록, 자신이 더 고귀한 존재라는 인식이 강해진다. (동기화된 추론)
그래서 높은 지위나 권력을 얻으려고 더 애쓰고,
높은 자리에 앉으면, 아래를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하기 쉽다.
 
 
좌파는 평등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를 추구하지만, 개개인은 따로따로 움직인다.
이미 사회전체를 하나의 공동체로 보기에, 그 속에서 각개로 움직이는 것이다.
간혹 단체를 만들더라도 집단이나 조직 보다는, ‘연대’라는 개념을 쓴다.
‘수평적 연결’이라는 인식기반을 가지기 때문이다.
 
우파는 계급을 기반으로 한 개인주의를 추구하지만, 조직을 구성한다.
우파는 사회전체를 공동체로 보지 않기에, 자신의 인지거리 안에서 다시 집단을 만든다.
그래서 우파 쪽은 온갖 이상한 이름의 조직이 넘쳐난다. (이게 우파의 풀뿌리 조직으로 작용한다.)
XXX협회, 000모임, △△△단, OOO본부 등..
 
 
대표적인 예로, 전두환의 ‘하나회’를 들 수 있다.
군대라는 조직 안에서, 다시 자신들끼리 뭉치는 조직을 만들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가 일어났을 때 한 의사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고발했다.
그런데 고발자 이름은 아직 설립되지도 않은 ‘의료혁신투쟁위원회(대표 최대집)’였다.
(의료혁신투쟁위원회, 박원순 고발…어떤 단체인가 보니
박원순 고발한 '의료혁신투쟁위원회'의 정체는?
 
고발부터 하고 단체설립은 나중에 한 것이다.
단체명으로 하면 더 있어 보이고,
게다가 대표라면 계급을 추구하는 우파사회에서 더 인정해주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조직, 저 조직 마구 가입해,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사람도 있다.
 
결국 이들이 조직을 만드는 이유는, 힘을 키워 더 많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다.
즉, 개인을 위해 조직을 활용한다는 개념이고, 이것이 계급을 추구하는 개인주의다.
지배계급의 논리지만, 우파의 피지배계층도 이를 수용한다.
(피지배계층이 집단에 집착하는 건 불안 때문인데, 불안은 별도로 다룰 예정이다.
여기서는 개인주의(개인을 위한 집단화)라는 개념만 이해하고 넘어가자.)
 
 
 
 
일반적으로 우파가 중시하는 집단의 최소 단위는 가족이다.
그러다보니 좌파가 사회문제를 이야기 하면, ‘네 가족이나 잘 챙겨라.’라는 비아냥을 듣기 쉽다.
보수적인 사회일수록 이런 가족 이데올로기를 더 강조한다.
얼핏 들으면 당연한 말이고 그럴 듯하지만, 그 배경에는 가족 이기주의가 깔려 있다.
- ‘나만 아니면 돼’, ‘나만 이익이면 그만이야!’
- ‘우리 집만 아니면 돼’, ‘우리 집만 이익이면 돼’, ‘우리 집만 손해 아니면 돼’
이런 말들도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관점의 [가족주의는 야만이다.] 이라는 책도 있다.
 
 
[가족주의는 야만이다.] 이득재. 소나무 출판사. 2001
 
은밀히 따지면 가족주의가 야만이 아니라, 야만이 가족주의에 집착하게 만드는 것이다.
참고로 좌파가 인식하는 사회전체에는 가족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별도로 강조하지 않는다.
이런 논리 모두 인지거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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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진화론적 서열인식
진화심리학에서는 계급지향을 남자의 본능이라고 한다.
육아와 채집을 하던 여자와는 달리, 사냥을 하던 남자는
계급구조가 되어야 지휘계통이 분명하고, 사냥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 많은 동물사회도 계급구조로 운영된다.)
 
그런데 이 계급에 대한 인식도, 좌파와 우파는 다르다.
좌파는 더 높은 계급이, 더 많은 책임을 진다고 생각하지만,
우파는 더 많은 권리와 혜택을 누린다고 생각한다.
좌파라고 진화론적 계급인식이 없는 게 아니다.
단지 계급의 의미를 다르게 인식하는 것이며, 우파가 주장하는 계급과는 다르다.
고로 진화론적 서열인식이 우파의 계급논리를 합리화 시키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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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방적인 좌파 vs 폐쇄적인 우파
 
인지거리가 긴 좌파는 상대적으로 개방적이고,
인지거리가 짧은 우파는 상대적으로 폐쇄적이다.
 
인지거리가 길면 멀리 있는 대상들에게도 호의적이다.
이는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마음이나 추상적인 영역에도 마찬가지다.
또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받아들이는데 거리낌이 적다.
이런 성향이 변화를 추구하는 좌파의 특성으로 작용한다. (진보성향)
동시에 자신을 개방하는데도 거리낌이 적다. (탈권위주의)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권력이나 정보도 마찬가지다.
 
인지거리가 짧으면 나 혹은 주변(우리)에게만 호의적이고, 그 바깥쪽에는 배타적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거나, 새로운 사람과 섞이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인지거리 바깥은 믿지 않는 편이다.
그러니 최대한 안쪽의 것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빼앗길까봐 두려워한다. (보수성향)
악착같이 지배계층으로 올라가거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것도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다.
(재물, 권력, 여자(중동의 히잡 같은 것도), 모두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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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정보 공개에 관련된 기사들
우파정권은 천안함, 세월호, 메르스 등의 사건이 있을 때마다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의혹을 키우며 부실한 대처로 일관했다.
기사: 민변·참여연대, 천안함 자료 정보공개 청구 소송
기사: 메르스와 세월호 정보 71%가 비공개 설정
기사: ‘메르스 병원’ 공개도 부실…이런 정부, 어찌 믿겠나
기사: 메르스 회의록 공개 못해. 회의 참석자 개인정보"..또 '비공개' 정부
 
천안함(좌상), 세월호(좌하), 메르스 대책을 발표하는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우) 사진출처: 한겨레
 
 
 
좌파는 빠르게 공개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메르스 대책 브리핑. 사진출처: 경향신문
 
하지만 때론 싸우는 것까지 공개하기도 한다.
기사: 문재인, 천정배의 ‘너나잘해라’에 “무례하다”…안철수엔 “잘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
언론이 부추기는 현상도 있지만, 공개적으로 다투는 현상이 우파보단 잣다.
우파는 공개적으로 다투지 않고 뒤에서 다툰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우파가 정권을 잡으면, 정책 투명성은 한없이 떨어진다.
 
기사: 한국, 정책투명성 캄보디아보다 낙후
정치인에 대한 신뢰 97위, 사법부의 독립성 82위...후진국 수준
 
기사: 메르스 사태 통해 본 박근혜 정부, 해외 시각은?
 
 
이미지 출처: 뉴시스
이명박 정권에서부터 정책결정 투명성은 곤두박질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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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의 정도는 성(性)적인 문제에도 적용된다.
성매매합법화도 좌파성향의 나라에서 더 잘 이루어진다.
우파성향 국가는 폐쇄적인 상태에서 지배하고 통제하려 들기에,
불법화 시키고 힘 있는 자들만 누리려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한 인권피해는 당연히 우파성향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
 
우파기득권은 자신들의 영역을 공고히 하려고,
계층이동 사다리를 없애, 개천에서 용이 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자신들만의 카르텔(파벌)을 만들고, 그 벽을 더 높고 두껍게 쌓는 것이다.
이 모두가 자신의 인지거리 바깥은 믿지 않는 폐쇄적 성향 때문이다.
 
 
 
 
 
 
 
■ 우파(보수)는 억울하다?
 
가끔 우파 지지자 중에는, 좌파가 자신을 악마로 본다고 어이없어 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은 나라를 생각하는 애국자인데, 왜 그렇게 자신을 공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해를 못하니 억울해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나라처럼 보수성향이 강한 나라에서는 이런 억울함(?)이 더 자주 나타난다.
‘난 착실히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이런 내게 나쁜 놈이라고?’
‘뭐? 내가 친일파를 지지하고, 독재를 지지한다고?’ 라는 것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저들(좌파)이 나를 음해하고 모함한다고 생각한다.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나를 나쁜 놈으로 몰아붙인다는 인식이다.
 
기본적으로 좌파가 좀 더 공격적인 건 사실이다.
좌파는 윤리(옳고 그름)를 추구하기 때문에, 옮음을 기반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우파지지자에게 ‘니네들 왜 나쁜 짓에 동조하고 지지하냐? 니들도 다 나쁜 놈들이야.’ 라고 하면,
도덕(예의)을 추구하는 우파는 ‘어디서 함부로 큰소리치느냐? 조용히 해라.’라며
내용(본질)보다는 형식(현상:예의)에 더 집중한다.
 
 
이런 심리도 인지거리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 내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 예의도 바르고(도덕 추구), 주위에서 인정도 받고,
- 길에 떨어진 휴지도 줍고, 신호등도 잘 지키고,
- 지나가는 노인의 리어카도 밀어준다.
- TV에서 수재민이 났다면 모금활동에 참가하기도 한다.
- 이런 내가 왜 이기적이라고 욕먹어야 하지?
라고 생각한다.
 
인지거리는 단순히 물리적 거리가 아닌 인식이 닿는 거리다.
그렇지만 물리적 거리가 짧으면, 인식도 그만큼 닿기 쉽다.
쉽게 말해 눈앞에 보이면 반응하는 것이다.
 
코앞의 휴지를 줍거나, 규칙을 지키고, 남을 도와주기도 한다.
나와 상관없는(먼 인지거리의) 수재민이지만, TV를 통해 눈앞에 보여주면 인식이 반응한다.
하지만 TV에서 보여줘도 인지거리가 닿지 않는 영역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4대강 비리, 부적절한 판결, 민간인 사찰, 부정선거, 도청, 국정화교과서, 위안부문제 등등..
나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일들은 그냥 혀 한번 끌끌 차고 넘어간다.
 
오히려 거기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좌파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닌데, 왜 시끄럽게 구는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오히려 그 시끄러움이 더 피해가 온다고 느끼고,
‘시끄럽다. 네 할 일이나 잘해라.’ ‘너희들은 왜 그렇게 부정적이냐?’ 라고 큰소리친다.
(참고로 이들은 시끄러움을 극도로 싫어한다.
무의식에서 혼란 및 불안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불안에 대해서는 다시 다룰 것이다.)
다시 좌파가 ‘이기적이다. 매국노다.’라고 대응하면,
바르게 사는 자기가 욕먹어야 할 이유가 없으므로, 자신을 욕하는 좌파가 나쁜 놈이라고 인식한다.
 
 
대부분의 순진한(?) 우파 지지자들은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다.
당연함(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생각이다. (동기화된 추론)
세계관의 영향은 자각하지 못하므로, 자신은 ‘그게 맞다.’고 철저하게 믿는다.
 
좌파는 친일파와 독재자의 후손을 어떻게 지지할 수 있냐고 답답해 하지만
그들의 인지거리는 거기까지 닿지 않는다. (이 부분도 나중에 다시 설명)
머리(지식적)로는 그런 일이 있었다고 알아도, 마음이 반응하지 않으므로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욕먹는 것에 대해 억울해 할 수 밖에 없고, (피해자라 인식한다)

자신을 욕하는 좌파가 나쁜 놈들(예의 없는 놈들)이라고 각인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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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의 본질 1부 – 5장. 보이지 않는 힘: 세계관 2
 
 
 
타고난(생물학적) 세계관은 생물학적 영역에서 영향을 받는다.
앞서 세계관이 다르면 인식체계가 달라진다는 걸 설명했는데,
인식체계가 다르다고 해서, 양극단의 두 가지 형태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그 중간쯤도 존재한다.
그래서 남자 같은 여자와 여자 같은 남자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개념은 좌파와 우파의 중간쯤인 중도에게도 해당된다.
앞서 설명한 동양과 서양의 차이에서도, 유럽은 그 중간쯤의 성향을 보인다.
모든 지표가 가운데라는 의미가 아닌, 이쪽저쪽 뒤섞여 있다는 의미다.)
 
 
 
 
■ 남자 같은 여자, 여자 같은 남자
 
뇌 과학이 발달하면서, 남자와 여자의 뇌가 다르고,
대화나 학습 등 여러 가지 활동에서 반응하는 부위가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화면캡쳐: EBS다큐 [아이의 사생활] 1부 – 남과 여
 
 
남성의 뇌를 ‘체계화의 뇌’, 여성의 뇌를 ‘공감의 뇌’라 부르기도 한다.
각각의 특징에 맞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두 뇌가 반응하는 양식이 다른데, 양쪽 뇌의 특성을 모두 가진 사람도 있다.
비율은 각각 17% 정도다.
 
 
화면캡쳐: EBS다큐 [아이의 사생활] 1부 – 남과 여
 
 
 
이렇게 뇌의 특성과 성별은, 임신 8~14주경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량에 따라 결정된다.
테스토스테론이 많이 분비되면 더 남성적이 뇌를 가지고, 적게 분비되면 더 여성적인 뇌를 가진다.
물론 이에 따라 세계관의 강도도 달라진다.
화면캡쳐: EBS다큐 [아이의 사생활] 1부 – 남과 여
 
 
즉,
더 남성적인 뇌를 가질수록, 대상 중심적 사고가 더 강하게 나타나고,
더 여성적인 뇌를 가질수록, 자기 중심적 사고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
 
 
 
남성형 뇌를 함께 가진 여성은 운전도 잘하고, 쉽게 삐치지도 않으며, 남자와 대화가 잘 통한다.
여성형 뇌를 함께 가진 남성은, 감성이 풍부하고 공감능력이 좋으며, 여자와의 대화도 잘 통한다.
 
일반적으로
남성형 뇌가 강할수록 더 논리적, 이성적이며, 개발자, 수학자, 공학자 등의 직업군이 많고,
여자의 감성을 감당하기 힘들어 한다.
여성형 뇌가 강할수록 더 감성적, 여성적이며, 공간 지각력도 떨어져 운전을 힘들어 한다.
이런 특성은 어느 쪽이 좋고 나쁘고가 아닌, 각자의 역할과 필요에 맞게 진화한 결과다.
특이한 점은 뇌성향이 가까울수록 대화가 잘 통하는데 비해,
이성적 매력이나 끌림은 약하게 나타난다.(거리가 먼 쪽에 더 강하게 작용한다)
나에겐 없는 모습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아무리 여성적인 남자라 해도 여자가 될 수 없고,
아무리 남성적인 여자라 해도 남자가 될 순 없다.
양쪽 뇌 성향을 모두 가졌다 해도, 본연의 세계관은 바뀌지 않는다.
단지 그 강도만 다르게 나타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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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의 세계관이론은 독자적인 것으로 같은 류의 책은 없다.
같은 맥락의 참고할만한 책은 뇌과학과 진화에 관련된 것들이다.
[브레인 섹스] - 앤 무어, 데이비드 제슬, 북스넛
[그 남자의 뇌 그 여자의 뇌] - 사이먼 배런코언, 바다출판사
 
 
[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 – 앨런 피즈, 바바라 피즈, 김영사
[욕망의 진화] -데이비드 버스, 사이언스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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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과정에서 만들어진 틀
 
세계관이 다르면 인식체계도 달라진다.
세계관의 충돌은 ‘당연함’과 ‘당연함’의 충돌이고, 이는 곧 서로 다른 인식체계의 충돌이다.
각자의 당연함이 자신에게는 [바른 길]이라고 느껴지는데,
상대가 안 그러면 ‘이게 당연한데, 저 사람은 왜 안 그러지?’라는 느낌을 만든다.
 
더 강한 세계관일수록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모른 채, ‘당연하다.’는 인식만 더 강해진다.
‘진보와 보수의 세계관’도 마찬가지다.
세계관의 강도로 보면
‘남자와 여자 >>>> 진보와 보수 >>>>>>>>>>>>> 동양과 서양’ 순이다.
더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세계관일수록, 더 강하게 작용한다.
 
본능과 세계관의 차이를 궁금해 하는 분도 있을텐데,
본능은 주로 생존과 종족보전을 위해 유전자에 기록된 단순한 행동패턴이다.
배가 고프면 식욕이 돋고, 멋진 이성을 보면 성욕이 자극된다.
절벽위에 서면 현기증이 나고, 뱀을 보면 두려움을 느낀다.
이처럼 육체적 문제에 직접 관련된, 한 번에 한 가지 반응을 보이는 게 본능이다.
 
이런 본능을 기반으로 ‘사고(생각)의 기초’를 마련한 게 세계관이다.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삶의 영위하는데 꼭 필요한 패턴이 본능으로 안착되었다면,
그 패턴을 바탕으로, 다시 세상을 해석하는 틀로 자리 잡은 것이 세계관이다. (마음속 깊이 깔려 있는 심상(心象: Image))
그러니 더 오래된 패턴일수록, 더 강한 세계관으로 자리 잡는다.
 
 
이런 본능과 세계관을 바탕에 깔고,
다시 성장과정에서 학습하는 것들이 무의식에 쌓여 새로운 틀이 만들어진다.
반복되어 누적되거나, 비슷한 것끼리 모여 새로운 패턴으로 안착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 진 틀을 바탕으로 직관, 습성, 느낌(feel), 감정 등의 무의식적 자동반응이 일어난다.
이런 반응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난다.
그렇지만 대부분 자신의 의지라고 인식한다.
 
강렬한 자극(놀람, 충격, 고통, 깨달음)도 외상장애(trauma) 같은 새로운 틀을 만든다.
이런 반응기제들이 먼저 작동하고, 그에 따르는 ‘동기화된 추론’이
우리가 최종적으로 가지는 생각(의식)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모두 언어지능(선천적 개념)을 가지고 있지만,
태어나 자란 곳(후천적 개념, 학습)의 언어를 익힌다.
그럼 생각을 하거나, 꿈을 꿀 때도 해당 언어를 사용한다. (자동 반응)
1차적으로 생물학적 능력을 바탕에 깔고,
2차적으로 환경의 영향을 받아 언어라는 새로운 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국과 홍콩에서는, 남자의 ‘주는 이미지’와 여자의 ‘받는 이미지’가 더 강화되어 있다.
이는 환경(후천적 학습)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
또, 조너선 하이트가 언급한 6가지 도덕성이나,
진보와 보수의 다른 인식들도 세계관을 바탕에 깔고, 환경의 영향이 보태어진 결과다.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학습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건 중도다.)
 
이처럼 성장과정에서 환경이나 학습 등 외부자극을 통해서무의식에 새로운 틀이 형성되는데,
그 바탕으로 작용하는 것이 바로 세계관이다.
 
성장하는 동안 무의식에 많은 틀들이 형성되면, 이후부터 들어오는 자극이나 정보는,
연관성 있는 틀과 만나 자동으로 반응하고 의식에서는 동기화된 추론을 만들어 낸다.
 
 
 
 
 
 
이제 대충 원리는 이해했을 것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무의식도 다양한 종류와 여러 층으로 나눠져 있고,
새로운 틀이 형성 및 소멸되거나 변화하기도 한다.
지금은 그렇게 전문적인 내용이 필요한 건 아니니, 이정도만 알고 넘어가자.
 
 
 
 
 
 
 
 
마지막으로, 세계관이 다르면 사고의 틀이 달라지는데,
정말 중요한 건 우리가 이 힘을 못 느낀다는 점이다.
단지 그로 인한 영향만 ‘당연하다.’고 느낄 뿐이다.
이 당연함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내가 가진 당연함’이 ‘타인의 당연함’과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있다.
 
‘같은 세계관 + 같은 환경’이면 비슷한 당연함을 가지지만,
‘다른 세계관 + 다른 환경’이면 전혀 다른 당연함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같은 사회에 살지만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의 충돌이다.
이러한 충돌을 완화시키기는커녕, 더 조장하는 세력들(기득권)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
참고: 무의식의 작용
 
무의식적인 인지과정들은 그 수가 엄청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규정한다.
우리는 아무런 생각 없이 이를 닦으며, 자동적으로 눈을 돌리고,
습관적으로 자동차 기어를 바꾸며, 대화중에 거의 자동적으로 생각을 문장이나
우리의 언어기관으로 옮긴다.
따라서 패서디나의 캘리포니아 기술연구소의 인지생물학자인 크리스토프 코흐(Christof Koch)는
[의식 – 신경생물학적인 수수께끼]에서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대부분 좀비다”라고 썼다.
(한국번역서명은 [의식의 탐구-신경생물학적 접근])
 
우리는 살아 있는 정신이 없이, 기계적으로 자신을 다스리는 좀비처럼 행동한다.
계산에 따르면 신경 사건들의 95%가 이처럼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며,
단지 뇌 활동의 5%만이 우리에게 의식된다.
더 극단적인 숫자로 표현하자면, 바이트 단위로 따져서 우리는 1초에 기껏
10~50 바이트를 처리 할 수 있을 뿐이다.
(책을 읽을 때 1초에 스물다섯개의 철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50바이트를 처리한 것이다.)
이에 반해 무의식적으로 활동하는 우리의 감각기관은 1초에 최소한
10,000,000~100,000,000 바이트를 처리한다.
 
출처: [의식의 재발견]-마르틴 후베르트. 프로네이스 출판.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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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의 본질 1부 – 4장 : 보이지 않는 힘: 세계관 2
 
 
 
세계관에 대한 이해의 두 번째로, 동·서양의 세계관보다 훨씬 더 강력한
남자와 여자의 세계관을 소개한다.
 
동·서양의 특성이 나눠진 건 1만년 정도의 시간 밖에 되지 않고, 그 사이 형성된 세계관의 힘도 약한 축에 속한다.
이걸 역으로 생각해보자.
1만년 정도 된 세계관이 그 정도 힘을 발휘한다면,
300만년 이상 된 세계관은 어느 정도 힘을 가질까?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출현을 약 300만년전으로 추정)
 
동양과 서양은 대화 도중 오해가 생겨도, 설명을 하면 쉽게 풀린다.
서로의 의도나 인식이 다르다는 걸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아무리 대화를 해도 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서로 이유를 몰라, 답답하거나 화가 나는 경우를 흔히 겪는다.
이는 오랜 기간 형성된 세계관에 의해 표현 양식이 다르고,
또 그걸 해석하는 코드가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참고로, 동양과 서양은 물리적으로 분리된 지역이라 이해가 되지만,
남자와 여자는 함께 살아왔는데 왜 다르지?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살아도, 역할분담이 다른 원시생활을 오랬동안 해오면 세계관도 달라진다.
그럼 뭐가 어떻게 다른지 한번 살펴보자.
 
 
 
■ 남자와 여자의 세계관
 
남자는 '대상중심적 사고를 하는 독립형 세계관'을 가지고 있고,
여자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관계형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자기중심'은 ‘이기적’이라는 의미가 아닌, ‘사고의 기준’이 자신이라는 뜻이다.
(왜 이런 세계관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설명하기로 하자.)
 
 
남자의 독립형 세계관은 커다란 세상이 있고, 그 세상과 분리된 세상을 바라보는 '나'가 존재한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세상과 분리된 존재들이다.
여자의 관계형 세계관은 '내가 세상의 중심'이고, 이런 나를 중심으로 주변인들이 연결되어 있다.
내가 관계하는(인지하는) 사람들까지가 ‘나의 세상’이고, 그 바깥쪽은 ‘나와는 다른 세상’이다.
 
 
남자가 인식하는 세상을 사회전체나 국가, 혹은 인류 전체의 범위라고 한다면,
여자가 인식하는 세상은 나와 내 주변까지다.
그 외는 모두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다.
물론 여자도 ‘학습’을 통해 사회나 국가라는 개념을 알고 있지만, 사고의 밑바탕에 작용하는 세계관적 의미는 아니다.
세계관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인데, 이때 작용하는 '세상'이라는 개념자체가 다르다는 뜻이다.
 
 
 
각각의 세계관에는 동·서양의 세계관처럼 방향성이 존재한다.
남자는 무언가를 ‘주는’, ‘나아가는’, ‘관심을 주는’ 쪽의 '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여자는 무언가를 ‘받는’, ‘받아들이는’, ‘관심을 받는’ 쪽의 '받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방향성이 생긴 이유를 요약하면,
- 남자는 사냥을 위해 세상에 나가야 했다. (나가는 이미지)
- 사냥을 한 후 여자에게 가져다준다. (주는 이미지)
- 종족보전을 위해서는 남자가 여자에게 유전자를 전해줘야 한다. (남자는 주고 – 여자는 받는 이미지)
 
오랫동안 이 패턴에 익숙해져, 남자는 주는 쪽, 여자는 받는 쪽의 이미지가 만들어 졌고,
단순히 유전자나 사냥감을 주고받는 문제를 넘어 인식의 방향으로 고착된 것이다.
 
 
 
 
‘사고의 기준(세상 vs 나)’과 ‘에너지의 흐름(주고 vs 받는)’ 의 차이로
대상을 이해(해석)하는 방식 표현방식이 달라진다.
인식체계(인지구조)가 다르게 발달한 것이다.
 
 
 
 
남자는 사고의 기준을 대상에 두고, 그 대상에게 관심을 주거나 다가가는 쪽으로 작용하고,
여자는 사고의 기준을 자신에게 두고, 대상으로부터 관심이나 영향을 받는 쪽으로 작용한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어떤 모임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났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저 여자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를 떠올리고,
여자는 '어떻게 하면, 저 남자가 나를 바라보게 할까?'를 떠올린다.
일부러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닌, 자동으로
'주는 이미지'와 '받는 이미지'의 영향을 받아 '동기화된 추론'이 일어나는 것이다.
 
또 서로 간 의견충돌이 발생했을 때, 서로 궁금해 하는 양상이 달라진다.
남자는 대상을 중심으로, 대상 자체가 왜 그러는지를 궁금해 한다.
그래서 “당신 대체 왜 그래?” 라고 한다. (주는 이미지의 작용)
여자는 나를 중심으로, 대상이 나에게 왜 이러는지를 궁금해 한다.
그래서 "나한테 대체 왜 이래?" 라고 묻는다. (받는 이미지 작용)
 
대상 중심적 사고와 자기 중심적 사고의 사례를 살펴보면,
 
대충 감이 잡히는가?
 
 
 
이걸 좀 더 응용해 보자.
남자와 여자가 차를 타고 달리던 중,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갔다.
 
여자: 커피 마시고 싶지 않아?
남자: 아니 난 괜찮은데?
여자: 흥!
남자: .....?????? (아니 왜 저러지?)
 
 
 
흔히 겪는 상황이지만, 서로 왜 저렇게 반응 하는지 모르고 있다.
여자는 남자가 자기 마음을 몰라준다고 삐쳐 있고, (왜 몰라주는지 이해 못하고)
남자는 여자가 왜 삐쳤는지 이해 못하고 있다.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여자의 자기 중심적 사고를 알아야 한다.
자기 중심적 사고는 자신의 욕구 표현을 기본 전제로 깔고 있다.
자신의 욕구를 피력하는 게 당연한 일이므로, 그 당연함(욕구)은 생략하고 묻는다.
당연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으니, 굳이 따로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커피 마시고 싶지 않아?"는 '난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당신은?' 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질문의 목적은 '내가 마시고 싶은 상황인데, 당신은?'이라고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
내게 동의해 달라고 물었는데 '난 괜찮아'라고 거절했으니, 자기 마음을 몰라준다고 삐치게 된다.
(굳이 답을 한다면, ‘커피 마시고 싶은가 보구나?’ 라고 해주면 된다.)
 
대상 중심적 사고를 하는 남자는,
화자에게 있어 대상인 '상대’(= 자신)의 의견을 묻는다고 인식(해석)한다.
그러므로 남자가 의향을 물을 때는,
'내가 그렇다.'는 개념이 빠진, 순수하게 상대의 ‘의향’만 묻는 질문을 한다.
순수하게 상대의 의견만 물은 것이니, 거절하더라도 묻는 사람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섭섭해 하진 않는다.
이런 인식을 가진 남자가 볼 때, 여자의 삐침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정리하면
- 여자의 질문은, 내 의견에 대한 동의요구 (자기 중심적 사고)
- 남자의 질문은, 상대의 의향을 묻는 것이다. (대상 중심적 사고)
 
 
이렇게 같은 질문인데도 의도가 다른 것은,
세계관의 영향으로 인해 ‘표현양식과 해석코드’가 다르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동양과 서양의 인식차이는 이만큼 크지 않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죽을 때까지 이걸 인식 못할 정도로 간극이 크다.
물론 경험으로 '그렇구나....' 라고 짐작할 순 있겠지만, 정확히 왜 그런지는 알지 못한다.
그만큼 세계관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자가 옷을 고를 때도, '이게 좋아? 저게 좋아?' 라고 묻는 건,
골라달라는 의미가 아닌 자신에게 동의해 달라는 의미다.
그러니 대응은 '당신은 어느 게 좋아?'라고 도로 물어보고, 그 선택에 동의해 주면 된다.
 
 
‘어? 난 안 그런데?’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자기욕구를 생략한 질문은 기본적으로 '함께 있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함께 있으면서, 여자가 "춥지?", "배고프지?", "힘들지?"라고 묻는 건, 대부분 자신이 그렇다는 뜻이다.
 
- 밖에서 만났을 때 : '춥지?' → ‘난 추운데 당신은?’ = 자신이 춥다는 뜻
- 식사시간에 : '배고프지?' → ‘난 배고픈데 당신은?’ = 자신이 배고프다는 뜻
- 같이 운동을 한 후 : '힘들지?' → 자신이 힘들다는 뜻
 
겨울철, 옷을 얇게 입고 나온 여자가 ‘춥지?’라고 물을 때,
두꺼운 파커를 입고 있던 남자가 ‘어 춥네~’라고 하고 말면,
여자의 눈에는 독이 오르고, ‘뭐 이딴 남자가 다 있어.’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도
대화의 기준을 자신에게 두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함께 있으면서 순수하게 상대의 의향만 묻는 경우는,  반드시 앞에 수식어가 붙는다.
- ‘밖에’ 덥지?
- ‘당신’ 배고프지?
- ‘시험’ 힘들었지?
등 주어나 목적어가 붙을 경우에는 ‘자신’을 기준으로 하는 대화가 아니다.
즉, 주체가 '나'가 아닐 경우는 인지적 ‘당연함’을 벗어나기 때문에 대상을 정의하는 것이다.
 
함께 있으면 ‘내가 느끼는 걸 너도 느끼니?’ 라는 전제가 깔리므로,
동의를 구하는 쪽의 질문을 한다. 공감해주길(공감 받길) 바라는 것이다.
 
대상 중심적 사고를 하는 남자는 상대의 의향만 묻는 질문을 하므로, 기본적으로 내 의향이 빠져 있다.
그러니 필요할 때만 ‘나’를 추가한다.
예를 들어, '내'가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커피 한잔 할 건데, 너도 할래?' 라는 식이다.

- '커피 마시고 싶지 않아? 난 한잔 하고 싶은데..."
- 으아 추워(내 의향), 야 안 춥냐?(상대 의향)",
안 덥냐?(상대 의향) 더럽게 덥네.(내 의향).
 
의 패턴으로 나타난다.
즉, 주체가 '대상'일 때는 생략하고, '나'일 때 정의하는 것이다. 여자와는 반대 패턴이다.
 
이 모두가 세계관의 작용으로 생기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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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인식체계란?
우리는 밖에 있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식체계대로 인식한다.
인식은 대상과 인식체계가 상호 작용하여 자동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인식체계란 대상과 상호 작용하여 인식을 일으키는 내면적 요소의 전체를 가리킨다.
내면적 요소란 자신 내면에 응축되어 있는 태조부터 이 순간까지의
모든 의식적, 무의식적 내용을 일컫는다.
이것은 어디에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 대상도 없으면 발현되지 않다가 대상을 만나면
자동적으로 상호 작용하여 무한한 인식을 만들어낸다.
 
출처: 언어로 이루어는 자기완성 – 배광호. IBG. p97
 
즉, 대상과 인식체계가 만나야 그 대상을 인식하는데, 일종의 해석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 대상 + 인식체계 = 대상 인식
고로 인식체계가 다르면, 같은 상황이나 말도 다르게 해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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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미의 분리 인식 vs 통합 인식
 
이번엔 한 단계 더 나아가, 좀 더 복잡한 사례를 살펴보자.
'자기 중심적 사고'와 '받는 이미지'가 함께 작용하면, 남자는 더 이해하기 힘든 일이 일어난다.
두 가지 이상의 의미가 하나로 통합되는 현상이다.
 
‘세상과 나’가 분리된 세계관을 가진 남자는, 대상과 나를 분리해서 인식한다.
즉, 대상은 대상이고, 나는 나다. 고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
그러나 ‘내가 세상의 중심’인 세계관을 가진 여자는, 대상을 나(중심)로 귀결시켜(받는 이미지) 인식한다.
대상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대상을 대상 그 자체로 보는가?’ vs ‘나로 귀결시켜 보는가?'의 인식차이가 생긴다.
 
예를 들어, 쇼 윈도우에 전시된 물건을 보고 '이거 예쁘지?'라고 한다면,
남자는 그 자체가 예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끝낸다.
‘그냥 그게 예쁜가 보구나.’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여자는 '내가 가지고 싶을 만큼 예쁘다.'라는 의미로 쓴다.
‘예쁘다.’는 말에 ‘가지고 싶다.’가 통합되어 있는 것이다.
 
여자가 한참 들여다보고 칭찬해대는 물건은,
'가지고 싶다.' → '그러니 사 달라.'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주로 한국형)
 
같은 맥락으로
- '그 영화 재미있대' → 나도 보고 싶다는 의미다.
- '그 음식 맛있대' → 나도 먹고 싶다는 의미다.
- '그곳 정말 멋있대' → 나도 가보고 싶다는 의미가 된다.
 
즉, ‘재미있대’라는 평에, ‘나도 보고 싶다.’는 의미가 통합되어 있고,
‘맛있대’라는 평에, ‘나도 먹고 싶다.’가 통합되어 있다.
해당 의미를 나로 귀결시켜 인식하기 때문이다.
여자에게 이런 식의 인식은 당연한 것이다.
 
 
 
기념일을 앞둔 여자가, 평소 봐둔 가방을 '예쁘다'며 한참 밑밥을 던져 놨다.
그런데 남자는 전혀 엉뚱한 선물을 하거나 그냥 지나친다.
그럼 여자는 삐치고, 남자가 자신에게 관심 없다고 인식한다.
자기가 그렇게 눈치를 줬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남자가 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 말에 둔하다 = 내게 관심 없다.)
 
그러나 대상(세상)과 나를 분리해서 인식하고, 주는 이미지를 가진 남자는
'예쁘다'에 '가지고 싶다'는 의미가 통합되지 않는다.
아무리 예쁘다며 감탄을 해도, 그냥 그 자체가 예뻐서 그런가보다 하고 끝낸다.
영화가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내가 보고 싶은 것과는 별개 문제고,
아무리 맛집이라 소문나도, 내가 먹고 싶은 것과는 별개로 인식한다.
 
 
무언가를 자랑할 때도,
남자는 대상을 대상 그 자체로 보기 때문에, 대상 사진만 찍는다.
그러나 여자는 대상을 나로 귀결시켜(받는 이미지) 보기에, 나와 함께 찍는다.
최종적으로 나로 귀결되므로 ‘난 이런 것도 가진 존재야.’ 라는 뜻이다.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남자가 '의미의 통합 인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여자는 '의미의 분리 인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남자의 말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인식한다.
자신은 의미를 통합해서 인식하는 게 당연하기에, 남자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서 이해한다.
남자에겐 없던(의도가 아닌) 의미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빙하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예를 들어,
데이트 중에 멋진 여성이 지나간다.
이때 여자가 '저 여자 멋있지 않아?' 라고 물었다.
여기에 순진하게 '오~ 멋진데?' 라고 하면 여자는 삐친다.
의미를 나로 귀결시키는 여자는 '예쁘다', '멋지다'라는 남자의 대답에서
'나도 (너 말고) 저런 여자와 사귀고 싶어'라는 의미를 읽어낸다.
머리는 그렇지 않더라도, 마음이 그렇게 반응해 버린다.
마음이 먼저 반응해 버리니, 이유도 모른 채 기분 나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동기화된 추론)
 
(한단계 더 들어가면,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기분이 나쁠 때는,
‘나’에게 영향을 준 ‘대상’에서 이유를 찾는다. 이 역시 받는 이미지의 작용이다.
덕분에 무조건 상대(남자)를 탓하는 경우가 생긴다. 여성 특유의 떠넘기기인데.
‘나는 받기만 했으니, 나한테 문제를 준 건 당신이잖아.’는 인식의 작용이다.)
 
남자 입장에선 단순히 질문에 답한 것뿐인데,
여자가 이상한 의미를 붙여 혼자 삐친 셈이니, 얼마나 답답할까!
 
이런게 그 유명한 "오빤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의 상황이다.
남자는 모를 수밖에 없고, 모르는 게 정상이다. (의미 인식체계가 다르니)
아는 사람이 특별한 것이다. (감각이 좋거나, 경험치가 풍부한)
 
(이미지:뭉크의 절규)
 
 
 
 
 
 
■ 왜 이상한 운전을 하는 여자가 많을까?
 
교통사고가 일어나는 패턴을 보면,
남자는 난폭한 운전과 대형사고가 많고, 여자 이상한 운전과 황당한 사고가 많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려면, ‘기준’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그럼 기준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야외에서 여자와 만나기로 했다. 이때 여자에게 위치를 물어 보면,
- 내 앞에 극장이 보이고,
- 오른쪽엔 분수대가 있고.
- 왼쪽엔 편의점이 있어.. 라는 식으로 설명한다.
자신을 중심으로(기준을 나로 잡고), 주변에 보이는 것들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자기 중심적 사고)
 
같은 질문을 남자에게 하면,
- 극장 남쪽, 분수대와 편의점 사이.. 라고 대답한다.
눈에 가장 잘 띄는 대상을 기준으로 잡고, 내 위치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대상 중심적 사고)
 
 
 
남자는 대상을 기준으로 내 위치를 인식하므로,
지도를 볼 때도 동서남북을 먼저 세팅하고 그 위에서 내 위치를 찾아낸다.
위치를 옮길 경우, 지도 위에서 ‘내가 움직였다.’고 이해한다.
기준을 지도(대상)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는 ‘나’를 기준으로 놓고, 대상(지도)의 움직임을 인식한다.
지도를 주면, 내가 가는 방향 혹은 내가 바라보는 방향을 앞쪽(혹은 위쪽)이라 인식하고,
방향을 찾으라면 지도를 빙빙 돌리며, 어느 쪽을 앞으로 놔야 할지 몰라 헤맨다.
남자처럼 지도를 기준으로 놓고 내 위치를 찾는 게 아닌,
나를 기준으로 놓고 지도를 맞추려 들기 때문이다. (물론 독도법을 배운 경우는 다를수 있다.)
 
 
 
도로에서도 마찬가지다. 도로 위를 달릴 때,
남자는 도로가(대상=기준) 있고, 그 위에서 내가 달려간다고 인식한다. (내가 움직인다고 인식)
여자는 내가 움직이면(내가 기준), 도로가 나를 향해 다가온다고 인식한다. (공간이 움직인다고 인식)
 
 
 
 
 
네비게이션 화면을 볼 때도,
남자는 내가 달려가고 있다고 인식하는데 비해,
여자는 도로 및 건물들이 나를 지나간다고 인식한다.
이미지 출처: 팅크웨어 아이나비 내비게이션 K11 AIR 광고
 
 
 
이 느낌을 이해하기 힘들면 열차를 타고 출발할 때를 생각해보자.
처음 부드럽게 움직이는 동안, 내가 앞으로 가는 게 아닌,
바깥의 풍경들이 움직인다고 느낀 적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여자가 인식하는 공간의 움직임이다.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공간을 인식했으므로, 그게 당연하다고 알고 있다.
공간 지각력이 남자보다 떨어진다는 것도, 이처럼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행 주차를 힘들어 하고, 후진은 더 못한다.
한번 상상해보자. 차에 타고 핸들을 왼쪽으로 꺽어 움직일 때,
차가 왼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 앞의 풍경이 오른쪽으로 움직인다면 어떤 느낌일까?
측면과 수평을 맞추려면 앞의 풍경을 미세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좁은 공간에 주차할 경우, 남자는 내가 그 공간에 쏙 들어간다고 인식하는데 비해,
여자는 공간이 나를 감싸고 들어온다고 인식한다. 이러니 주차가 쉬울 리 없다.
 
후진은 더 심하다.
3차원 입체화 능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주된 요인이지만, (이것도 자기 중심적 사고가 기반이다.)
전진할 때는 앞쪽 풍경만 움직였는데, 후진하면 뒤쪽 풍경을 봐야하고,
뒤쪽 풍경은 다시 앞쪽과 반대로 움직인다. (그래서 백미러를 안볼때가 많다. 어지러우니)
그러다 보니 내가 제대로 움직이는지 상황파악이 안 된다.
남자처럼 풍경이 고정이고, 내가 움직인다는 인식이 아니므로,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시간과 연습이 필요하다. (아예 익숙해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나를 기준’으로 공간을 해석하기 때문에, 내가 가는 방향이 곧 나의 길이 된다.
그럼 도로의 흐름이나, 교통법규를 무시한 움직임이 종종 생긴다.
신호등을 건너가듯 운전하는 여성운전자
이미지 출처: 구글 검색
 
 
 
‘나'를 기준으로 인식하는 인지체계의 가장 무서운 점은, 자신이 뭘 했는지 모른다는데 있다.
자기가 이상하게 움직였어도, 도로가 이상하게 움직인 것만 인식한다.
그러니 난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느낀다.
 
이상한 운전 때문에 남자들이 빵빵 거리거나 욕하면,
자신이 여자라서 만만하게 보고 위협한다고 인식한다.
여성운전자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면, 대부분 남자에게 피해를 봤다는 주장만 나온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인식은 없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기에, 피해를 줬다는 인식자체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후진해서 뒤차를 박아도,
공간의 흐름은 뒤쪽이 앞으로 밀려왔다고 인식하기에, 뒤차가 잘못했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으니,
이상한 운전에 대해 뭐라고 하면, “저 사람 대체 왜 저래?” 라는 표정을 짓는다.
사고가 날 뻔해서 화를 내면, ‘사고도 안 났는데, 왜 화 내냐?’면서 도로 황당해하고 피해의식을 가진다.
(이런 걸 더 쓰면 여성혐오라고 욕먹을지도 모르겠다.ㅎㅎ , 오해 없기를....인식체계에 의한 차이를 설명할 뿐이다.)
 
 
 
 
 
한때 인터넷 커뮤니티에,
‘마트 같은데서 여자들은 왜 자꾸 어깨를 부딪치나요?’ 라는 질문이 나돈 적 있다.
이것도 공간을 나를 기준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내가 기준이고, 다른 사람들이 내 옆을 스쳐지나가기에, 당연히 나를 피해 갈 거라고 인식한다.
양쪽 다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으니, 서로 어깨를 부딪치는 것이다.
그리고는 서로 상대가 나를 치고 지나갔다고 인식한다.
 
자 이쯤이면,
‘나는 안 그렇다.’, ‘내가 아는 여자는 안 그렇다.’, ‘내 여친(아내)은 운전을 잘한다.’
‘내 여친은 잘 안 삐친다.’, ‘같이 다른 여자의 몸매를 감상한다.’, ‘일반화의 오류다.’ 등의 반론이 있을 것이다.
실제 뇌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이라면, ‘헛소리하지 말라.’고 욕먹기 딱 좋은 내용이다.

예외가 왜 나오는지는 다음글에서 알아보자. 

Posted by Two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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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findhappy.net/post/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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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의 본질 1부 – 3장 : 보이지 않는 힘: 세계관 1
 
 
 
사전 지식의 세 번째로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무의식 깊은 곳에 존재하면서,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틀 중에 하나가 세계관이다.
세계관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자, '세상을 이해하는 기준'이다.
(이 정의가 이해하기 힘들 텐데, 곧 사례로 설명할 것이다.)
 
이 세계관을 자각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이미 그 영향(힘)을 받아, 그 틀 위에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계관도 본인에게는 '당연함'으로 작용한다.
세계관과 관련된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게 당연한 것 아니야?"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뜻이다.
 
보통 영화나 소설에서 언급하는 세계관은,
사고의 밑바탕에 깔려 ‘세상을 이해하는 기준’이라기보다는
‘이 세상은 이렇게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에 가깝다.
즉, 그 자체가 세계관이 아닌, 세계관의 작용으로 만들어진 ‘현상’의 나열인 셈이다.
 
앞서 언급한 조너선 하이트의 6가지 도덕 매트릭스도 세계관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현상에 가깝다.
무의식에서 작용하는 도덕성조차도, 세계관의 영향을 받은 후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럼 이 세계관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보자.
먼저 동양과 서양의 세계관이다.
 
 
 
■ 동양과 서양의 세계관
 
동양과 서양의 세계관은 다르다.
어떻게 다른지는 조금 있다 설명하고,
동양과 서양이 독자적으로 나누어진 시기는 1만년 전으로 추정한다.
1만년은 생물학적 세계관이 완성되기에는 짧은 기간이다.
 
그래서 동양의 아이를 서양에서 키우면, 서양의 세계관을 가지기도 하고,
서양의 아이를 동양에서 키우면, 동양의 세계관을 가지기도 한다.
선천적 틀(세계관)이 약한 만큼, 후천적 학습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 것이다.
 
비록 그 힘은 약해도, 타고난(선천적인) 틀의 형태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앞쪽과 뒤쪽의 개념’이다.
 
2008년 EBS 다큐 [동과 서]가 방영된 후, 아래 이미지가 인터넷에 나돌았다.
참고로, 동양은 중국, 한국, 일본 등의 동아시아 한자문화권, 서양은 북미를 중심으로 한 영어문화권을 말한다.
즉, ‘동쪽 끝 VS 서쪽 끝’의 비교다. )
 
 
 
질문: 다음 그림 중 어느 게 앞쪽에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변으로
서양인들은 작은 우주선이 앞이라고 했고, 동양인들은 큰 우주선을 앞이라고 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다큐 [동과 서]에서는
서양은 원근법이 발달했고, '내가 본다.(I see)'는 관점이 중요하므로 그렇다고 설명했고,
동양은 역원근법과 인드라망(구슬 투시)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틀린 이야긴 아니지만,  너무 어렵게 설명했다.
 
 
좀 쉽게 이야기하면,
동양은 '도착점'에서 '출발점'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고 있고,
서양은 '출발점'에서 '도착점'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고 있다.
 
 
 
 
이걸 좀 더 이해하기 쉽게, T자 구조로 바꿔보자.
그럼 어느 우주선이 앞쪽인지 바로 알 수 있다.
 
 
 
동양과 서양 모두 '도착점(도달점)'을 앞이라고 생각한다.
앞이라는 ‘기준’은 같지만,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우주선의 크기가 다르게 보인다.
그래서 동양인은 큰 우주선을 앞이라고 하고, 서양인은 작은 우주선을 앞이라고 하는 것이다.
 
 
 
 
집 주소를 읽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지점을 찾아가려면, 큰 분류에서 작은 분류로 이동해 간다.
즉, 출발하는 곳은 큰 분류이고, 도착하는 곳이 작은 분류(정확한 지점)이다.
이 개념은 동·서양이 모두 같다.
그렇지만 바라보는 위치가 달라, 주소를 불러주는 방식이 달라진다.
 
동양은 도착점에서 주소를 부르고, 서양은 출발점에서 주소를 부른다.
동양은 나를 찾아오는 사람에게 말해주는 방식이고,
ex) 경기도 의정부시 용민로 1번길 35, 1동 103호
 
서양은 내가 도착해야 할 지점에서부터 읽는 방식이다.
ex) 1-dong 103-ho, 35, Yongmin-ro 1beon-gil, Uijeongbu-si, Gyeonggi-do
 
 
 
 
질문을 할 때도 자신의 위치를 기준으로 한다.
 
도착점에서 출발점을 보는 방식은 ‘과거를 바라본다.’는 개념이다.
그래서 동양은 "왜?(Why?)" 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원인(출발, 근원) 혹은 이유가 뭔지 알고 싶은 것이다.
- 왜 그렇게 되는 거지?
- 대체 왜 그러는 거야?
- 원리가 뭐지?
 
출발점에서 도착점을 보는 방식은 '미래를 바라본다.'는 개념을 가진다.
그래서 "어떻게?(How?)"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어떻게 하면 도착지에 갈 수 있는지를 '방법'을 묻는 것이다.
- 어떻게 하면 그걸 할 수 있지?
- 그럼 어떻게 하면 돼?
- 어떻게 그렇게 되는 거야?
 
 
 
 
과거를 보는 시선과 미래를 보는 시선의 차이로,
동양의학은 이유, 원인, 뿌리, 근본을 찾아 전체적인 흐름을 복구하는 쪽으로 발달했고,
서양의학은 어떻게 하면 해결 될지를 찾아, 문제가 되는 부분을 도려내는 외과술이 발달했다.
 
 
 
어떤 사건이 생겼을 경우,
동양은 '왜 그랬을까?' '이유가 뭘까?'를 궁금해 하고,
서양은 '어떻게 처리되는지?' '이후 전개는 어떻게 되는지?'를 더 궁금해 한다.
예를 들어, 총기사고가 나면
동양 언론의 보도는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에 무게를 두고,
서양 언론의 보도는 앞으로 어떻게 처리 될 것인지에 무게를 둔다.
 
 
 
 
 
 
아이를 혼낼 때도,
동양은 아이를 집에서 내쫓고, 들어오지 말라고 한다.
(도착점에 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 체벌이다.)
이제는 도시화되어 보기 힘든 풍경이지만, 과거 시골에서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체벌했다.
서양은 집에 가두고, 나가지 말라고 한다.
(외출금지: 도착점에 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 체벌이다.)
 
쌍둥이를 낳을 때,
동양은 내가 있는 곳에 먼저 도착한 아이가 형이다. (먼저 태어난 아이)
서양은 내가 있는 곳에 먼저 자리 잡은 아이가 형이다. (나중에 태어난 아이)
(양쪽 다 내 품에 먼저 안긴 쪽을 형으로 인식한 것이다.)
 
술 마신 후 취했을 때,
동양은 자신이 과거에 한 일을 자랑한다. (내가 말이야~~!! 왕년에 말이야~~~!!)
서양은 이제 자기가 갈 곳을 자랑한다. (난 뭔가 해낼 거야! I will~ )
그래서 같이 술을 마시면,
서양인은 동양인을 보면서, '왜 저렇게 과거에 집착하지?' 라고 느끼고
동양인은 서양인을 보면서, '왜 저렇게 허세를 부리지?(아직 하지도 않은 일을 떠벌리지?)' 라고 느낀다.
 
일을 맡길 때도
동양은 과거에 성공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 믿는다.(과거 지향)
서양은 과거에 실패 했더라도, 그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다면 기회를 다시 준다. (미래 지향)
그래서 우리나라는 기회를 주는 것 자체가 인색하다.
경력자만 뽑으며 경력 쌓을 기회를 안주거나, 실패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
 
물건을 살 때
동양은 고객이 낸 돈에 물건 값을 빼는 계산을 한다. (10000원 - 6000원 = ?)
즉, 도착점에 맞는 계산을 하는 것이다.
서양은 물건 값에 얼마를 보태야 낸 돈과 맞는지를 생각한다. (10000원 = 6000원 + ? )
출발점과 맞는 방식으로 계산한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도 서양에서 발달했기에, 같은 패턴을 가지고 있다.
ex) int T = X + Y
 
 
한국 소셜 미디어(SNS)가 망한 이유도 세계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동양은 도착점에 있으므로, 상대의 말을 잘 들으라고 가르치고,
서양은 출발점에 있으므로, 더 논리 있고 조리 있게 설명하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소통이 안될 경우,
동양은 듣는 사람이 못 알아듣는다고 탓하고,
서양은 말하는 사람이 제대로 설명 못한다고 탓하는 경향이 있다.
 
 
 
 
 
이게 소셜미디어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대표적인 SNS였던 싸이월드.
페이스북 보다 먼저 시작했지만 세계화되지 못하고 사장됐다.
‘왜 우리나라 SNS는 세계시장에 나가지 못했는가?’라는 분석이 많이 나왔고,
가장 흔한 원인으로 꼽는 게 한글의 특수성, 고립성을 지적했다.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영어로 바꾸면 될 걸...)
 
 
그보다 중요한건, 밑바탕에 깔린 '화자의 말'을 전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자기 방’에 글을 써두면, 상대가 찾아와서 내용을 봐야 하는 구조다.
내가 도착점에 있기에, 친구가 무슨 글을 써놨는지 가서 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서양은, 내 방에 글을 쓰면 친구들에게 다 전해지는 구조를 하고 있다.
내가 말을 하면 친구들에게 다 들리는 서양과,
와서 보고 퍼가야 하는 동양은 전혀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SNS 댓글은 '퍼가요'로 도배된다.
 
 
 
 
이렇게 노가다(?)로 퍼오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양의 SNS를 접하면,
'우와 신기하다. 여기다 쓰면 다 전해지네?'라고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양인이 우리나라 SNS를 접할 경우
'엥? 이게 뭐야? 그냥 기록장(일기장)인가?' 라고 반응했을 것이다.
 
서양의 경우 자신의 인지체계와 전혀 다른, 답답한 SNS를 쓸 이유가 없다.
그러니 우리의 SNS가 경쟁력이 없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동양은 남이 나를 본다고 인식하고, 서양은 내가 남을 본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동양이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쓴다. 남이 만족해야 나도 만족스럽다.
서양은 내가 만족스러우면 그만이다. 그만큼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다.
 
 
 
 
 
앞서 세계관을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라고 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가?
무의식의 저 깊은 곳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우리의 사고 밑바탕에 깔려 그 힘을 발휘한다.
(방향성을 좌우)
 
이런 세계관이 무의식 더 깊은 곳에 위치할수록 더 강하게 작용하고, 
우리의 자유의지와는 무관하게 그 룰을 따르게 된다.
우리가 자유롭다고 해도, 지구 안에서의 자유 인것처럼,
의식이 아무리 자유롭다 해도, 세계관 안에서의 자유만 누릴 수 있다.
세계관의 관점에서 보면 우린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는 셈이다. (손오공 이야기)
 
 
 
동양과 서양의 세계관은 그나마 약한 편이다.
다음 편엔 이보다 훨씬 더 강력한 세계관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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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위 내용은 동·서양의 세계관 전부를 설명한 게 아니다.
그중 일부만 소개한 것이므로, 더 궁금한 사람은 아래 책들을 참조하시길....
 
[생각의 지도] - 리차드 니스벳. 김영사
 
 
 

[동과 서] - EBS <동과서> 제작팀, 김명진. 지식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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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의 본질 1부 – 2장.  동기화된 추론

 
 
미리 알아둬야 할 사항 두 번째로 ‘동기화된 추론’을 소개한다.
기본적으로 이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이 시리즈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
 
 
 
■ 동기화된 추론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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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화된 추론 이론은 신경과학의 핵심 통찰에서 나왔다.
사고와 추론에는 감정이 얼룩진다. (감정의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
자극과 정보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많은 부분 깊이 생각한 결과나 냉철한 판단이 아니며, 오히려 감정적이고 자동적이다.
우리의 반응은 의식적인 생각보다 먼저 나온다. (의식적 생각이 부재하는 상태로)
신경과학자들은 뇌 활동의 대부분이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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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똑똑한 바보들] - 크리스 무니 - p.50
 
동기화된 추론은 어떤 정보를 접했을 때 순간적으로 작용하는 '무의식의 반응'에 맞춰
'의식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말한다.
무의식에서 반응이 먼저 생긴 뒤, 그 반응에 맞춰 의식에서 생각(추론)이 떠오른다는 뜻이다.
 
[바른 마음]의 저자 조너선 하이트는 이걸
"직관이 먼저고, 전략적 추론은 그 다음이다."라고 정의하고,
'코끼리'와 '기수'에 비유해서 설명했다.
흔히 기수가 코끼리를 움직인다고 생각하는데, 뇌의 반응은 그 반대다.
코끼리(무의식)가 먼저 움직이고, 기수(의식)는 코끼리가 움직이는 이유를 추론하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이런 식으로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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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마음은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모습은 마치 기수(통제된 인지 과정)가
코끼리(자동적 인지 과정)의 등에 올라타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기수는 코끼리의 시중을 들어주도록 진화했다.
 
- 기수가 코끼리를 시중드는 모습은, 사람들을 도덕적 당혹감에 빠뜨렸을 때 목격할 수 있다.
사람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강하게 직감하고,
그 느낌을 사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사후 정당화의 근거를 만들어 낸다.
설령 하인(추론 능력)이 아무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와도,
주인(직관)은 자신이 내린 판단을 바꾸지 않는다.
출처: [바른 마음]- 조너선 하이트. p 109~110
이미지 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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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진보진영이 "북한과의 교류와 협력이 평화를 이끈다."고 하면,
보수진영은 이게 현시점에서 가장 이상적인 논리라 해도, 마음에 안 든다고 느낀다.
(평소 진보진영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무의식의 작용)
그러니 의식에서는 자동으로 까댈 이유를 만들어 낸다. (동기화된 추론)
그 결과로 나온 게 '저놈들은 빨갱이다! 종북이다!'라는 욕이다. (그래서 북한과 협력하려 든다는 뜻)
‘김대중이 빨갱이라서, 노무현이 빨갱이라서, ~ 한다.’라는 말도
진짜 그런게 아닌, 그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사후에 만들어낸 이유다.
 
욕할만한 그럴듯한 이유가 없어도 욕을 만들어 내고, 그 뜻을 바꾸지 않는다.
이것이 "하인이 아무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돌아와도, 주인은 판단을 바꾸지 않는다." 는 뜻이다.
흔히 '진영논리에 빠졌다.'고도 하는데, 의식이 무의식의 반응에 따라가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인터넷에서도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커뮤니티나 SNS 활동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가 생기면,
이후 그 사람의 글을 보면, 기분 나쁘거나 재수 없다는 느낌이 먼저 들고,
순간적으로 반박(공격)할 논리를 찾아낸다. (설사 쓸데없는 것일지라도)
상대를 까기 위해,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다.
 
또, 세상에 대한 불만이나 분노가 가득한 사람은, 계속 어그로를 끌거나 악플을 단다.
이 경우엔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없다.
외부의 모든 정보가 ‘자기 안에 쌓인 분노’를 자극하기 때문에 기분이 나빠지고,
동기화된 추론은 기분 나쁜 이유와 반격(공격)할 꺼리를 찾아낸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월호 관련 악플이다.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희생자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악담을 퍼부어 실형을 받은 적 있다.
즉, 이런 일은 대상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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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세월호 희생자 성적 모욕한 '일베' 회원 '징역 1년'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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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이성의 관계도 비슷하다.
감정이 먼저 생기고, 이성은 '왜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 설명할 이유를 순식간에 찾아낸다.
‘만들어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유를 찾지 못해도 감정은 바뀌지 않는다.
이런 특성은 여성들에게 더 잘 나타난다.
한번쯤 겪어 봤겠지만, ‘감정이 상했다.’지만 왜 그런지 설명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냥 그렇다고 느낄 뿐이다.
(참고로 조너선 하이트는,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이 감정이므로,
이성과 반대급부로 보는 건 의미 없다고 했다. 같은 연장선이라는 의미다.)
 
 
 
똑같지는 않지만, '시스템 1'과 '시스템 2'라는 개념도 있다.
대니얼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시스템1과 시스템2를 이렇게 정의 했다.
-----------------------------------------------------
시스템 1: 거의 혹은 전혀 힘들이지 않고 자발적인 통제에 대한 감각 없이 자동적으로 빠르게 작동한다.
시스템 2: 복잡한 계산을 포함해서 관심이 요구되는 노력이 필요한 정신 활동에 관심을 할당한다.
활동 주체, 선택, 집중에 대한 주관적인 경험과 연관되어 작동하는 경우도 잦다.
 
시스템 1은 자동으로 작동하고,
시스템 2는 편안한 보통 상태에서는 별 노력을 요하지 않고 역량의 일부만 가동한다.
시스템 1은 시스템 2를 위해서 인상, 직관, 의도 느낌 등을 지속적으로 제안한다.
시스템 2의 승인을 받으면 인상과 직관은 믿음으로 바뀌고, 충동은 자발적 행위로 변한다.
실제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지만 이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게 진행될 때,
시스템 2는 거의, 혹은 전혀 수정 없이 시스템 1의 제안을 그대로 수용한다.
출처: [생각에 관한 생각]- 대니얼 카너먼. 김영사. p.33 p.39
생각에 관한 생각 -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생각의 반란! | 원제 Thinking Fast and Slow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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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마음(시스템 1)에서 어떤 느낌이 들면,
머리(시스템 2)는 그걸 그냥 받아들이고,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따져보진 않는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든 이유를 추론(합리화)해버리고 끝낸다.
이 때문에 우리는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기 쉽다.
‘수학’과 같이 시스템1과 관계없이 생각할 일이 생겨야 시스템2가 제대로 일을 한다.
정보가 들어올 때마다 하나하나 따져가며 판단하면 너무 피곤하기 때문에,
익숙한 것들은 자동으로 처리하는 시스템이 발달한 것이다.
 
 
결국 동기화된 추론은 무의식이 먼저 반응하고,
의식에서는 그 반응을 합리화하기 위한 이유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이 이론을 처음 접하면 거북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내 생각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온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다. (일정부분 자유의지가 없다는 의미도 된다.)
 
무의식이 먼저 반응(직관)한 뒤, 떠오르는 생각(추론)이 있을 때,
내가 인지하는 건 후자인 '생각(자동 처리된 추론의 결과)' 밖에 없다.
전자의 작용은 인지하지 못하므로, 내 생각을 내 의지라고 인식한다.
동시에 내게 있어, 내가 가진 생각은 ‘당연한 것'이 된다. (이게 정말 중요한 개념이다.)
그러니 ‘이게 당연한 것 아냐?’ 라고 느낀다.
 
 
조너선 하이트가 주장한 6가지 도덕성도 무의식(직관의 영역)에 형성된 틀이다.
무의식에서 작용하는 만큼 '자신의 생각'이,
그 '도덕성을 기반으로 일어났다.'는 지각은 없다.
그러니 도덕기반이 다르면, 같은 정보가 들어와도 서로 다른 '결과 값(생각)만‘ 인식한다.
그게 '자신에게는 당연한 것'이므로, 상대가 다르게 이해하거나 행동하면,
상대가 잘못 되었다고 인식해 버린다.
이것이 '인지적 당연함'의 힘이다.
 
 
 
 
여기까지 이해가 되는가?
이해되었길 바란다. (안되면 천천히 다시 읽어 보시길...)
하지만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이렇게 무의식의 작용으로 의식이 만들어진다면,
그 무의식에 들어 있는 6가지 도덕 매트릭스, 혹은 그와 비슷한 것들은 어디서 왔을까?
이게 더 궁금하지 않은가?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주는 ‘무의식 속의 어떤 틀’들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것이 있고, (본능)
성장(양육)과정에서 형성되는(입력되는) 후천적인 것이 있다. (학습)
 
후천적인 것들은 자라는 환경 속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이다.
그럼 선천적인 건 무엇일까?
본능이 그런 종류지만, 본능은 직접적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아 알기가 쉽다.
(식욕이나 성욕 같은 것들은 쉽게 드러난다.)
그렇지만 6가지 도덕 매트릭스처럼 직접 드러나지 않는 무언가도 있다.
 
그 무언가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무의식(잠재의식, 심층의식)보다,
더 깊은 곳에 위치하고, (심층의식의 바닥 - 그래서 아예 느끼질 못하는 채로)
더 많은 영향을 주는(대부분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힘이다.
더 깊은 곳에서 작용할수록 '당연하다'는 정도가 강해지므로 영향력은 더 커진다.
본능을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그게 무엇인지 탐구해 보자.
 
 
-----------------------------------------------------------
참고: 무의식의 작용 사례
트라우마는, 강한 자극으로 무의식에 어떤 새로운 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은 그 영향으로 괴로워하면서, 그 이유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무의식에서 의식에 영향을 주기만하고 직접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관심종자'라 불리는 사람도 이 범주에 속한다.
이들은 타인이 기분 나쁠 글을 쓰고 주의를 끈다. (‘어그로’라고 표현)
이들 대부분은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유를 모른 채, 단지 그렇게 하고 싶은 충동만 느낀다.
가끔 이유를 말해도 ‘동기화된 추론’으로 만들어 낸 이유일 뿐, 진짜 이유는 아니다.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본인이 왜 그러는지 모르는 것이다.
단지 그렇게 하고 싶은 충동만 생길 뿐이다. (충동에 휘둘리는 상태 = 무의식에 휘둘리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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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의 본질 1부 1장 – 기초 정보들
 
 
 
 
■ 들어가면서
 
모든 민주주의 국가는 좌·우로 나눠 대립하고 있다.
왜 그럴까?
 
기존의 책들은 좌·우파의 다른 점은 설명해도,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최근에서야 이런 연구가 나오고 있다. )
정치 성향이 달라 대립하면서도,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른 채 대립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기득권의 조작으로, 좌우가 극한 대립중이다.
국민의 에너지를 엄청나게 갉아먹고, 천문학적 사회비용을 낭비하고 있다.
심지어 가까운 친구사이도, 정치인식이 다르면 서먹해진다.
그래서 '대체 왜 그런지?' 이유가 궁금했다.
 
흔히 좌파와 우파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이 글도 그걸 설명한다.)
 
기득권의 조작은 타고난 성향을 더 분열하고, 대립하도록 만든 것이지 창조해낸 건 아니다.
어찌보면 이 글도 분열을 조장한다고 욕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유를 모른 채 분열하는 것도 답답하지만,
분열된 상태를 막무가내로 봉합하려 드는 것도 억압(강제)이다.
 
최소한 이유를 알아야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어야 인정할 수가 있다.
인정할 수 있을 때, 수용도 가능하다.
고로 소통의 전제 조건은 존재의 인정이다.
비록 '나와 같은 인식'을 가진 사람이 아닐지라도, 어떤 존재인지는 알아야 한다.
그래야 대화를 시도하거나 전략을 짤 수 있다.
이 글은 왜 그렇게 된 건지를 탐구한 결과다.
이 글이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초석이 되었으면 한다.
 
글은 크게 3 파트로 나눠 설명할 것이다.
1부는 생물학적 영향을 기반으로 한 좌파와 우파(진보와 보수)의 차이
2부는 사회학적 영향(주로 한국 사회의)으로 인한 내용
3부는 현실정치의 희망사항을 쓸 예정이다.
 
 
그리고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미리 알아둬야 할 사항이 있다.
1. 용어의 기원과 좌·우파의 알려진 특징
2. 동기화된 추론의 작용
3. 생물학적인 영향을 이해하기 위한 '세계관'이다.
 
우선 용어의 기원부터 살펴보자.
 
 
 
 
■  '진보와 보수'의 기원(유래)
 
우리나라는 6.25전쟁 및 북한과의 대립 덕분에,
'좌파와 우파'라는 명칭이 나쁜 뉘앙스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진보와 보수'로 바꿔 쓰는데, 사실 좌·우파는 나쁜 개념이 아니다.
 
좌파와 우파의 기원은 프랑스 혁명이후 국민공회에서
급진개혁, 사회주의, 농민과 노동자, 빈민 등을 대변하던 자코뱅파가 좌측에
온건개혁, 자유주의, 자본주의, 상공업자, 부자 등을 대변하던 지롱드파가 우측에 앉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즉, '좌파와 우파'는 정치성향을 뜻한다.
(물론 이렇게 앉았기 때문에 좌·우파로 나눠진 게 아닌,그들이 왜 좌측과 우측으로 나눠 앉았는지를 탐구한다.)
 
'진보와 보수'는 정치성향을 실천하는 행동양식으로,
진보는 현재 체제를 바꾸고 개혁해 나가자는 뜻이고,
보수는 현재 체제를 지키자는 뜻이다.
여기서 체제는 단순히 정책만을 말하는 게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구조(전통포함), 권력구조(기득권), 경제구조(돈)를 모두 포함한다.
 
그러니 좌·우파 모두 행동양식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좌파에서도 진보와 보수가 있을 수 있고, 우파도 마찬가지다.
(과거 한나라당의 소장파도, 보수내에서의 진보에 속한다.)
 
기본속성이 좌파는 진보적이기 쉽고,우파는 보수적이기 쉬워
흔히 좌파진보(진보좌파), 우파보수(보수우파)라 칭한다.
이걸 다시 줄여 ‘진보와 보수’라 부르는 것이다.
 
우리나라 현실정치로 보면,
때때로 우파보수가 변화에 능하고, 좌파진보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현상)만 봤을 때다.
본질까지 본다면,
우파보수는 기득권을 획득하기 위해 변화를 꾀하는 것이고, (기득권을 유지해야 현상유지가 가능하므로)
좌파진보는 신념을 유지하기 위해 변화에 능하지 못한 것이다. (신념을 바꾸면 정치할 이유가 없으므로)
 
대체로 정치성향(좌·우파)은 고정인 편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행동양식(진보에서 보수로)이 바뀌고,
그로 인해 다시 정치성향까지 바뀌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생물학적 변화에서 오는 현상이 많은데, 나중에 다시 설명할 것이다.
 
 
------------- 참고 -------------
시사통: [11/16지식통] 극우와 보수는 다른가?
[좌우파 사전]을 책임 편집한 조형근 교수님이 나와 보수에 관한 설명을 해준다.
합리적 보수에 대한 기대가 있는 분은 한번 들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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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책들과 좌·우파의 기본 특성
 
 
이 글의 베이스가 된 책들이다.
그 외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 폴 슈메이커
[중간에 서야 좌우가 보인다] - 이진우
[한국의 보수와 수구] - 이나미
[유한계급론]- 소스타인 베블린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 조지 레이코프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 토마스 프랭크 .... 등등의 책을 참고 했다.
정치 분야 외 진화심리학, 심리학, 사회학등도 있으니 필요에 따라 언급할 예정이다.
 
 
1. 좌파와 우파의 기본 특성
 
출처 - [정보는 아름답다.]-데이비드 맥캔들리, 생각과 느낌.  p14~p15
 
 
위 이미지는 [정보는 아름답다]에 나온 좌·우파의 특성을 정리한 것이다.
미국에서 만든 것으로 우리 현실과는 다를 수 있지만, 큰 틀에서는 차이가 없다.
클릭하면 큰 이미지가 보인다. 한번 살펴보시길 바란다.
 
 
이미지가 보기 힘든 사람을 위해 주요 항목만 텍스트로 정리해보자.
 
# 기본 사상
좌파는: 진보적, 미래중시, 평등주의, 이상주의 등 평등의 관점을 지향한다.
우파는: 보수적, 과거중시, 약육강식, 적자생존 등 공정(형평성)의 관점을 지향한다.
평등은 도착점에서 낙오자 없이 함께 하자는 개념에 가깝고,
공평은 출발점에서 똑같이 시작하자는 개념에 가깝다.
(‘공평=똑같은 기회’를 부여하면, 당연히 강자나 부자가 더 성공할 수밖에 없다.= 약육강식의 세계)
 
# 사회 문화
좌파는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이상주의를 가지고 있고,
우파는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보존주의를 가지고 있다.
좌파는 윤리중심의 사회를 추구한다. (이치, 옳고 그름 추구 – 개인적 예의가 무시되기도 한다. )
우파는 도덕중심의 사회를 추구한다. (도리, 예의범절 추구 – 옳고 그름이 무시되기도 한다. )
(윤리는 타인과의 관계, 도덕은 개인의 내면을 기준으로 한다.)
좌파는 포괄적, 다문화(개방적), 진화(발전)를 지향하고,
우파는 배타적, 민족주의적(폐쇄적), 보수(보전)를 지향한다.
 
#가정
좌파는 자애로운 부모와 자존감 높은 아이를 추구한다. (대화로 인한 신뢰)
우파는 엄격한 부모와 자립성 강한 아이를 추구한다. (당근과 채찍의 위압, 공포)
덕분에 평균적인 자존감은 좌파가 높고, 행복지수도 높게 나온다. (극좌는 예외)
 
#좌파의 신념
종교: 과학적, 비조직적, 비전통적
권리: 모두가 준수해야 한다. (중요)
범죄자: 사회와 경제의 피해자다.
노숙자: 불평등한 사회 체계의 피해자
사회: 개인을 위한 사회, 사회를 위한 개인의 공존
 
#우파의 신념
종교: 유신론적, 조직적, 전통적
권리: 타인이 간섭해선 안 된다. (중요)
범죄자: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노숙자: 게으르고 무능하다. 부끄러운 줄 모른다.
사회: 강한 자가 살아남는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세계
 
#자유와 평등에 관한 인식
좌파: 자유란 권력남용이나, 불평등에서의 자유를 말한다.  
평등이란 평평한 운동장 같은 개념이다.(모두 같이 놀 수 있는 곳이라는 개념)     
이 중 더 중요한 것은 평등
 
우파: 자유란 성공, 혹은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말한다.     
평등함이란 기회다.(같은 기회를 주는 것 자체가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개념)     
이 중 더 중요한 것은 자유
 
만약 당신이 좌파적 성향을 가졌다면,  좌파가 추구하는 내용에 끌릴 것이고,
우파적 성향을 가졌다면,  우파가 추구하는 내용에 끌릴 것이다.
이쪽저쪽 확연하게 섞여 있다면 중도성향으로 볼 수 있다.
 
 
 
 
2. 좌·우파의 원천을 도덕성에서 찾는 - 조서넌 하이트의 [바른 마음]
 
많은 학자들이 좌·우파로 갈라진 이유를 경제에서 찾다가 실패하고,
(가난한 이들도 부자를 위해 투표하므로) 고개를 돌린 곳이 도덕성이다.
그 중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은 최근에 가장 주목 받았던 책이다.
여기서 말하는 도덕성은 '자신의 마음에 따라 행동한다.'는 의미인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양심'보다는, '사고의 기준'이라 보는 게 적절하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배려(피해), 자유(압제), 공평성(부정), 충성심(배신), 권위(전복), 고귀함(추함)의  
6가지 도덕 매트릭스를 가진다고 한다.
이중에서
진보는 배려, 자유, 공평성의 3가지 관점을 도덕성으로 인식하는 반면,
보수는 6가지 모두를 도덕성으로 인식한다.
 
한국 현실정치로 설명하면
진보가 인식하는 도덕성(사고의 기초)은
1. 배려 - 약자에 대한 배려(권력과 힘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 하는)
2. 자유 - 억압과 통제 받지 않을 자유
3. 공평성 - 같은 수준에 도달한다는 공평성즉, 평등에 관한 개념들이다. 
 
보수가 인식하는 도덕성은
1. 배려 - 약자에 대한 적선 (그래서 나타나는 게 기부) 혹은 충성하는 자에 대한 배려
2. 자유 -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되는 자유. (진보가 인식하는 자유와는 다르다.)          
(보수는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반대 세력을 억누르는데 법을 동원하고,          
진보는 강자들이 약자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려고 법으로 제한을 건다.          
법을 쓰는 용도가 다른 셈이다.)
3. 공평성 - 진보가 키 작은 사람에겐           
더 높은 의자를 내주는 것을 공평으로 인식하는데 비해 (평등사상)
보수는 똑같은 의자를 내주는 걸 공평으로 인식한다. 
똑같이 대우해 줬다는 의미다. (공정사상)
 
추가되는 부분으로
4. 충성심 – 조직에 대한 충성. 즉, '옳던 그르던 나를(우리를) 배신하면 죽는다!' 는 개념이다.           
(그러니 내부 고발자를 배신자로 지칭한다.)
5. 권위 - 보수적일수록 권위의식이 강하고, 권위에 대한 저항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만큼 갑질하기 좋아한다.)
6. 고귀함 - 권위와 충성심과 연결되는 항목이다.           
고귀한 존재를 떠받들고, 그에 복종하고, 충성해야 한다.           
(덕분에 개신교와 보수는 궁합이 좋다. 고귀한 존재라는 개념이
그들의 사고방식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엘리트주의도 여기에 속한다.)
 
이렇듯 보수에서 추가된 항목은 ‘계급’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들이고,
계급적 요소가 없으면 아예 성립하지 않을 개념들이다.
진보는 ‘평등’ 기반의 윤리를 추구하기에, 계급적 항목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보수는 이런 진보를 "싸가지 없다, 예의 없다." 라고 평가한다.
 
이미지 출처 : [바른 마음] 조너선 하이트, 웅진지식하우스.  p.523,  p.541
(미국은 자유주의자를 별도로 분리하고, 도덕 매트릭스도 따로 있지만, 우리나라 실정과는 맞지 않아 생략했다.
우리는 보수가 자유주의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좌파는 평등기반의 도덕성을, 우파는 계급기반의 도덕성을 가지고 있다.  
계급에서 나오는 권위, 충성, 고귀함 항목을 잘 기억해 두자.
 
 
 
 
 
3. 공동체주의-개인주의, 평등주의자-위계질서주의자
 
아래는 크리스 무니 [똑똑한 바보들]의 일부다.
이 역시 도덕적 가치관이 정치성향에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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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 토론자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지해줄 서로 다른 전문가의 말을 인용한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전문가가 옳고 신뢰성 있으며 상대편 전문가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예일대학교 로스쿨 교수 댄 케이헌(Dan Kahan) 연구팀이 실시했던 흥미로운 조사에 따르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도덕이나 사회질서에 대한 관점은
처음부터 누구를 권위 있는 과학 전문가로 간주할지를 뚜렷이 예견해준다고 한다.
주장이 엇갈리는 이슈에 대해, 과학계의 의견 일치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할지도 예측해주며,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전문가의 전문지식을 거절하도록 만든다.
사람들은 그냥 반대편 전문가는, 아예 전문가가 아니라고 취급해 버린다.
 
케이헌은 개인을 정치적 가치관과 도덕적 가치관에 따라
개인주의자-공동체주의자, 위계질서주의자-평등주의자로 분류했다.
이 개념을 쉽게 이해하려면 어릴 때 수학시간에 본 적 있는 두 개의 축을 가진 좌표평면을 생각해보면 된다.
 
-중략-
 
위계질서적-개인적인 사람들은 보수주의자에 대응하고,
평등적-공동체주의적인 사람들은 진보주의자에 대응한다.
이 두 집단은 대체로 서로 다른 사분면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물론 현실에서 각 개인은 사분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고, 사안에 따라 위치를 바꾸기도 한다.
출처: [똑똑한 바보들] - 크리스 무니, 동녘사이언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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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설명을 그림으로 그리면 아래와 같다.
 
다른 설명이 더 필요 없을 정도로 쉽게 구분된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좌파나 우파라는 말은 아니다.
공동체를 추구하면서 위계질서를 중시할 수도 있고,
개인적이지만 평등을 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좌파와 우파는 대부분 해당 사분면에 속한다.
 
 
이걸 개개인으로 분리하면,
A로 갈수록 공동체와 평등사상을 중요시 하고, B는 중도성향,  
C로 갈수록 개인주의와 위계질서를 더 중요시한다.
앞서 언급한 조너선 하이트의 도덕성과 맞물린다.
 
 
 
여기까지 이미 알려진 좌파와 우파의 기본 특징과 도덕적 가치개념을 알아봤다.
외울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대충 흘려 넘기면, 이후 설명이 와 닿지 않을 테니

꼼꼼히 살펴보며 평소 가졌던 생각과 비교해보길 바란다. 

Posted by Two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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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va

여러이야기/IT 2016. 3. 28. 11:41

 Genymotion : VirtualBox 의 가상화 기술을 이용한 Android 기기 Emulator


Genymotion 3편 : 안드로이드 스튜디오와 지니모션 연동하는 방법. http://www.itgoblin.com/217



Posted by Two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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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ail.cabsoftware.com/node/24


자바 기술은 프로그래밍 언어와 플랫폼 모두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자바 프로그래밍 언어는 고수준 객체 지향형 개발 언어이며 플랫폼은 자바 프로그래밍 언어로 작성되어진 어플리케이션을 실행시키는 환경입니다.
자바 플랫폼의 종류는 몇 가지가 존재합니다. 대부분의 개발자들이 각각의 자바 플랫폼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어 이번 기회에 이를 정리해보고자 글을 써봅니다.
 
자바 프로그래밍 언어 플랫폼
자바 프로그래밍 언어의 플랫폼은 4가지가 존재합니다:

  • 표준 에디션의 자바 플랫폼(Java SE)
  • 엔터프라이즈 에디션의 자바 플랫폼(Java EE)
  • 마이크로 에디션의 자바 플랫폼(Java ME)
  • JavaFX

모든 자바 플랫폼들은 자바 가상 머신(JVM)과 어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바 가상 머신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플랫폼에서 자바 기술을 사용한 어플리케이션을 동작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입니다. API는 개발자들이 직접 컴포넌트나 어플리케이션을 만들 때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컴포넌트의 집합입니다. 각각의 자바 플랫폼에서는 가상 머신과 API를 제공함으로써 타겟 플랫폼상에서 동작되도록 작성된 어플리케이션들이 자바 프로그래밍 언어의 장점인 플랫폼에 비종속적이며 강력하고 안정성을 갖춘 개발하기 용이며 안전함을 갖는 장점들을 그대로 갖출 수 있게 합니다.
 
Java SE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바 프로그래밍 언어를 떠올릴때 바로 이 플랫폼이 됩니다.  Java SE의 API는 자바 프로그래밍 언어의 핵심 기능들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기초적인 타입부터 네트워킹, 보안, 데이터베이스 처리,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개발은 물론 XML 파싱에 이르는 고수준의 클래스들을 모두 다룰 수 있습니다.
코어 API에 더하여 자바 SE 플랫폼에서는 가상 머신, 개발도구, 배포 기술 그리고 자바 기술을 사용하는 어플리케이션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부가적인 클래스 라이브러리들과 툴킷까지 제공하고 있습니다.
Java EE
자바 EE 플랫폼은 자바 SE 플랫폼을 기반으로 그 위에 탑재됩니다. 자바 EE 플랫폼에서는 대규모, 다계층, 확장성, 신뢰성 그리고 보안 네트워킹 어플리케이션의 개발과 실행을 위한 API 및 환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Java ME 
자바 ME 플랫폼에서는 모바일 폰과 같이 자바 프로그래밍 언어 기반의 어플리케이션이 보다 조그만 가상 머신으로 동작시킬 수 있는 기능과 API를 제공합니다. 물론 자바 SE API의 하부 구조로 API가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일관성 있는 개발이 가능하게 됩니다. 작은 장치에서 동작하는 자바 어플리케이션 개발에 필요한 전용 클래스 라이브러리들을 제공하며 자바 EE 플랫폼 서비스의 클라이언트 역할을 수행하게 될때도 있습니다.
Java FX
경량 사용자 인터페이스 API를 사용하여 리치 인터넷 어플리케이션을 만들 때 사용됩니다. JavaFX 어플리케이션은 하드웨어 수준에서 가속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그래픽과 미디어 엔진을 갖추고 있어 보다 클라이언트의 성능에 신경을 써야하는 분야에서 사용하면 좋습니다. JavaFX 어플리케이션 또한 자바 EE 플랫폼 서비스의 클라이언트 역할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http://dkatlf900.tistory.com/5


Eclipse 도 개발할수있는 환경이 여러종류인데 JAVA를 접해보셨다면 JAVA SE,JAVA EE 가 있습니다 .

 

JAVA SE (Java Standard Edition)

자바 표준 에디션은 가장 기본이 되는 에디션입니다.흔히 자바 언어라고 하는 대부분의 패키지가 포함된 에디션이며

주요 패키지로는 java.lang.*, java.io.*, java.util.*, java.awt.*, javax.rmi.*, javax.net.* 등이 있습니다.

 

JAVA EE (Java Enterprise Edition)

자바로 구현되는 웹프로그래밍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JSP, Servlet을 비롯하여, 데이터베이스에 연동하는 JDBC, 그 외에도 JNDI, JTA, EJB 등의 많은 기술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Java EE는 Java SE의 API에 추가로(lib 디렉토리에 포함되어 있는 JAR파일들)의 차이입니다.

Posted by Two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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